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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과학기술학 연구자 임소연 교수 (1)

기술의 젠더편향에는 기술개발 시 남성 사용자 혹은 남성의 몸을 표준으로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젠더편향과, 젠더 고정관념을 적용함으로써 생기는 젠더편향이 있습니다.

코드 매니저 김수향 2021년 07월 23일

2021-6월 커먼즈펍 "기술과 젠더편향"의 발제를 맡아주셨던 임소연 교수님께 인터뷰를 통해 기술의 젠더 편향이 발생하는 이유와 이를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노력 등을 더욱 자세하게 여쭤보았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과학기술학 연구자 임소연입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인문학연구소에서 물질과 기계 그리고 혐오를 주제로 연구하고 있고요, 서울대학교에서는 ‘과학기술과 젠더', ‘과학기술과 연구윤리'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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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교수님께서 세미나, 토론회 등 많은 곳에 초청받으시고 바쁘신 것 같아요. 요즘들어 ‘기술과 여성 혹은 젠더’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하는 곳이 더 많아진 걸까요? 많아진 거라면 왜 그런 걸까요?

단연, ‘이루다' 덕분입니다! 2016년 ‘알파고' 때는 아무도 저를 찾지 않으셨는데 올해 초 ‘이루다'가 문제가 되니 저를 찾아 주시더라고요. 물론 그 사이에 제가 좀 더 전문성이나 인지도가 생겼다거나 여러 이유가 있을 수 있겠죠. 그런데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루다라는 챗봇이 ‘20대 여성 대학생'의 페르소나를 가졌다면 알파고로 불린 인공지능 바둑 프로그램은 ‘30대 남성 전문가’의 몸을 갖지 않았던가요? 알파고를 대신해서 이세돌을 상대했던 이가 30대 중국 남성 아자 황이었죠. 알파고는 이미 잘 짜여진, 통제된 환경에서 수많은 카메라를 앞에 두고 인간 남성 대리인의 몸을 빌려 이세돌이라는 또다른 인간 남성 전문가와 프로 바둑 대결을 했습니다.

반면 이루다는 인공지능 ‘친구'였기 때문에 통제되지 않는 아주 사적인 환경에서 주로 10-20대 사용자들과 일대일로 대화를 해야 했어요. 그렇다 보니 그 과정에서 일부 남성 이용자들이 그 사적인 대화 중 했던 성희롱 발언을 온라인에 전시하고 또 챗봇이 대화 중에 했던 혐오 발언 역시 문제가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넓게는 기술과 윤리의 문제이지만 이루다가 여성이었다는 사실이 기술과 여성 혹은 젠더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불러 일으켰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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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캐터랩이 개발했다가 논란이 된 후 서비스가 중단된 '이루다'의 캐릭터)

기술의 젠더편향, 왜 생기나요?

우선 젠더편향이란 무엇인지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기술의 젠더편향을 크게 두 가지 유형으로 구분합니다. 하나는 기술개발 시 남성 사용자 혹은 남성의 몸을 표준으로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젠더편향입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 충돌 사고시 안전성을 시험하기 위해 사용되는 인체 모형 ‘더미'라는 것이 있는데 성인 평균 남성을 모델로 하는 더미는 70년대부터 사용되었지만 성인 여성을 모델로 한 더미는 90년대 중반에야 비로소 유럽의 한 자동차 회사에 도입되었어요. 그조차 정식으로 미국과 유럽의 자동차 안전도 평가에 적용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서랍니다. 요즘엔 점차 다양해지고 있지만 버스나 지하철의 손잡이도 성인 남성의 키를 기준으로 잡기 편하도록 만들어졌죠.

다른 하나는, 여성을 배제하지 않지만 여성과 남성에 대한 고정관념, 젠더 고정관념을 적용함으로써 생기는 젠더편향입니다. 남자 아이의 장난감은 파란색에 로봇이나 자동차이고 여자 아이의 장난감은 분홍색에 인형이나 화장대인 것이 대표적이죠. 인공지능 스피커라고 불리는 음성인식장치처럼 비서나 안내원의 역할을 하는 기계의 경우 초기에는 여성의 목소리가 디폴트인 경우가 많았죠. 여자들이 어떤 일을 잘 한다거나, 여자라면 이런 것들을 좋아할거야 이런 고정관념이 기술에 담겨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이 두 유형의 젠더편향이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아니고 젠더 고정관념으로 인해 남성에게 대표성을 부여하게 되는 측면도 있겠습니다.

이런 젠더편향이 왜 생기냐구요? 사실 젠더편향은… 특별한 이유나 의도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로 자연스럽게 생길 수 밖에 없어요. 남성 더미에 여성 더미까지 개발하고 사용하려면 비용과 시간이 더 듭니다. 실험실에서 수컷 쥐만 사용하다가 암컷 쥐까지 사용하려면 역시 비용과 시간이 더 들겠죠. 기술개발에서는 효율성이 중요하잖아요. 게다가 젠더 고정관념까지 더해지면 고민조차 하지 않게 됩니다. 운전은 남성이 잘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으니 운전자 더미로 남성을 쓰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고요, 주방일은 여성의 몫이라는 고정관념이 있으니 싱크대 높이를 여성의 키에 맞추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습니다. 네비게이션 장치의 친절한 젊은 여성의 목소리, 듣기 좋잖아요? 소비자의 선호는 젠더 고정관념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러니 기술의 젠더편향은 절대로 놀랄 일이 아니에요. 일부러 애써 고민하지 않는 이상, 기술의 젠더편향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기술의 젠더 편향의 해소가 왜 중요한가요?

기술의 젠더편향은...여성에게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인류의 반이 불편해 하고 어쩌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는 일을 이제는 막아야 하지 않을까요? 수십년 동안 남성 더미로 자동차 안전성을 테스트해 온 결과 동일한 조건 하에 사고를 당했을 때 여성 운전자가 남성 운전자에 비해 심각한 부상을 당할 가능성이 47%나 높습니다. 여성은 그저 작은 사이즈의 남성이 아니거든요. 여성의 다른 몸을 고려하지 않는다면 자동차는 여성에게 더 위험한 기술이 됩니다. 그리고 그 위험비용은 결국 사회에게 부담이 되겠죠. 그러니 길게 보면 처음부터 여성 더미를 포함시켜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 오히려 더 효율적인 일이 됩니다.

그에 비해서 인공지능 비서가 여성이면 뭐 좀 어떤가 싶으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대개 그 여성은 어떤 여성인가요? 중저음 목소리의 무뚝뚝한 여성이거나 카랑카랑한 목소리의 노년 여성인 경우가 있나요? 주로 밝고 상냥하고 언제나 친절한 젊은 여성이지 않나요? 기술이 여성의 페르소나를 가질 때 그 여성은 젠더 고정관념을 충실하게 따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라져야 할 젠더 이데올로기가 기술을 통해서 인공지능 비서 프로그램이나 스피커의 모습으로 우리 일상을 함께 한다면...그 이데올로기는 더 단단하고 더 자연스러워지겠죠.

기술의 젠더 편향 해소를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필요할까요?

물론입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기술의 젠더 편향은 '자연스럽게' 생기거든요. 일부 의식있는 엔지니어나 경영자가 자발적으로 젠더 편향 해소를 위해 노력하기도 하지만 엔지니어의 선의나 의식에 마냥 기댈 수는 없습니다. 기술개발 과정의 어디쯤에서는 반드시 최소한 한번 이상은 젠더 편향을 고민하고 점검하게 하는 제도가 있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의학 연구에서 남녀 피험자를 동일하게 모집하듯이 인공지능의 학습 데이터셋도 남녀 모두를 대표할 수 있게 만드는 거죠. 연구개발팀의 구성원에 여성 혹은 젠더 전문가를 반드시 포함하도록 강제할 수도 있겠고요. 이렇게 기계적으로 성비를 맞추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인위적으로라도 젠더 편향을 의식하고 고민하게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더불어 기술평가나 제품승인 단계에서 젠더 편향을 검증하는 절차와 전문 인력을 마련할 필요도 있습니다. 더불어 공학교육에서도 젠더와 다양성, 기술의 포용성 등에 대한 교육이 강화되어야겠죠. 이런 제도화를 통해서만이 젠더 편향 해소를 위한 노력이 업계 관행이나 공학 문화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자리잡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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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