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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과학기술학 연구자 임소연 교수 (2)

"세상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여성들에 주목합니다. 이공계 여학생 대상 행사에도 그런 분들이 와서 도전과 성공의 스토리를 전하죠. 그런 뉴스들이 많아지면 여학생들이 이공계 전공으로 몰릴 것 같지만 사실 그 반대입니다."

코드 매니저 김수향 2021년 08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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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과학기술학 연구자 임소연 교수 (1)에서 계속)

과학기술/IT 분야에서 여성인력이 적은 이유, 이 분야에 발을 들이더라도 오래 남지 못하는 이유와 이를 해소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일까요?

과학기술/IT 분야 여성의 소수성, 정말 고질적인 문제죠. 이건 정말 할 얘기가 너무 많고, 해결 방안만 해도 할 얘기가 너무 많아서 여기에서 다 말씀드릴 수는 없고요. 여성의 경력단절 문제나 이공계의 남성중심적인 문화 등등 원인에 대해서는 들어보셨을 거에요. 그래서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그 중에 딱 하나만 짚어보겠습니다. 유리천장을 뚫고 최초의 대기업 임원이 된 여성, 수십년만에 그 분야 노벨상을 수상한 여성, 온갖 역경을 딛고 연구를 계속해서 결국 인류를 구원한 발견을 한 여성...익숙하시죠? 세상은 뛰어난 능력을 가진 여성들에 주목합니다. 이공계 여학생 대상 행사에도 그런 분들이 와서 도전과 성공의 스토리를 전하죠. 그런 뉴스들이 많아지면 여학생들이 이공계 전공으로 몰릴 것 같지만 사실 그 반대입니다. 오히려 이런 메시지를 주죠. '이 정도로 뛰어나지 않으면 이 분야에 들어오지 않는게 좋을걸!' '여성으로서 받는 차별은 네 능력이 뛰어나면 극복할 수 있어!' 여성은 분명 과학기술을 할 충분한 능력을 갖추고 있습니다. 굳이 그렇게 뛰어난 소수의 여성들만 강조할 필요가 없어요. 안 그래도 완벽주의인 여성들을 더 완벽의 늪에 빠지게 할 뿐이에요.

그럼 어떻게 하느냐. 여성 개인이 아니라 여성 집단의 능력을 얘기해야 합니다. 수학 못하는 여자를 보며 '저 애는 수학을 못하는구나'가 아니라 '역시 여자는 수학을 못해'라고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수학 잘 하는 여자는 예외적인 여자이지 '역시 여자는 수학을 잘 해'라고 보지 않죠. 소수의 뛰어난 여성이 예외적으로 보이지 않게, 여성 집단이 보인 능력과 성과들을 더 크게, 더 자주 이야기해서 여성들끼리 연대감이 생겨야 여성들이 위기가 닥치거나 선택의 기로에 섰을 때 스스로에게 가혹하지 않고 다른 여성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최근 주목하고 계시는 젠더 불평등 혹은 젠더 편향이 심각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이 있으실까요?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답은 아니지만...바로 떠오르는 사례가 있어요. 최근 네이버에서 "모두를 위한 AI"를 만들겠다며 대대적으로 컨퍼런스를 열었는데 17명 패널이 모두 남자더라구요. 실리콘밸리를 그렇게 선망하고 따라하려고 애쓰면서 실리콘밸리에서는 보여주기식으로라도 지키려고 애쓰는 인적 다양성은 쏙 빼놓고 따라하더라구요. 저는 이게 가장 심각한 문제라고 봅니다. 인적 다양성이 이렇게 바닥이면 당장 드러나는 젠더 편향보다 드러나지 않은, 앞으로 드러날 젠더 편향이 더 심각할 거거든요. 여자 개발자가 없다는 변명을 하겠지만...개발자가 아니어도 인공지능의 윤리를 고민하는 여성 연구자들이 많이 있어요. 그들이 취업을 하고 싶어도 취업할 곳이 없다는 거, 이 인공지능 붐 속에서 그런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일할 곳이 없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코로나19 시대에 특별히 대두된 디지털 젠더 편향 이슈가 있을까요?

코로나 19, 디지털, 젠더 하면 두 가지가 떠올라요. 둘 다 온라인 수업과 관련되어 있는데요. 우선 온라인수업이라는 이름으로 엄마의 일이 늘어난 것. 기술이 남성친화적이라고 하지만 그 기술이 아이의 교육이나 돌봄, 가사 등과 관련된 것이면 자연스럽게 여성친화적이 되죠. 전문성이나 직업 등 돈이 되는 기술을 만들고 사용하는 일은 남성들이 주로 하지만 돈이 안되는 양육과 돌봄, 가사와 관련된 기술을 소비하고 사용하는 것은 주로 여성들이 한다는 사실이, 코로나 시대 학교 교육이 온라인으로 전환되면서 여실히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

다른 하나는 공사를 넘나드는 디지털 기술이 우발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드러냈던 남성들의 문화가 생각나요. 주로 대학 온라인 수업에서였던 것 같은데 남성 교수자가 실수로(?) 포르노 영상을 노출(?)시켰던 일들, 또 페미니스트 여성 교수의 온라인 수업에 어린 남성들이 무단 침입했던 일도요. 온라인 수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둘 다 있을 수 없었던 일이었죠. 코로나 19로 인해 디지털 기술이 공사 구분이 뒤섞이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고 있고 오프라인에서 잘 드러나지 않았던 여성혐오와 남성문화가 드러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커먼즈펍에서 ‘기술의 젠더편향을 안 생기게 하려는 의도를 가진 엔지니어가 필요하다’고 말씀해주신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런 엔지니어가 더 많이 생기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까요?

엔지니어들이 젠더편향과 각종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의식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그런 의도를 갖는다면야 더할 나위없이 좋겠지만...현실적으로 그걸 기대하는 건 힘들거고요.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결국 인위적으로 그런 의도를 갖게 만들어야 합니다. 제도가 필요하죠. 기술개발 과정에서 자꾸 젠더편향을 신경쓰게끔 그렇지 않으면 승인이 안 나거나 패널티를 크게 받거나 사회적으로 지탄을 받도록요. 사실 엔지니어가 그런 의식은 갖되 실제로 그 일을 다 할 수는 없다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엔지니어 개개인이 모든 능력을 다 갖출 수는 없으니까요. 기술의 젠더편향을 담당하는 전문인력이 필요하고 혹은 기술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이를테면 알고리즘 키트나 데이터셋 같은 것이 개발되어도 좋겠습니다. 요즘 AI 대학원이 여기저기 많이 생기는데 젠더 편향 포함 윤리를 다루는 전문인력 개발도 꼭 포함되어야 하겠습니다.

물론, 당연히, 애초에 ‘젠더편향을 안 생기게 하려는 의도’를 이미 가지고 있을만한 사람들, 즉 페미니스트 엔지니어를 키우면 되겠죠. 페미니스트 엔지니어라고 하면 어울리지 않아 보이고 뭔가 금기어같기도 하지만, 페미니스트 엔지니어가 많아지면 젠더편향을 안 생기게 하려는 의도를 가진 엔지니어들이 많아질 거라는 건 확실합니다.

개인적으로 교육자, 연구자로서 기술의 젠더 편향의 이슈와 관련하여 노력하고 싶은 것이나 앞으로 가고자 하는 방향은 어떤 것인가요?

연구자로서는 기술의 젠더 편향 사례들을 열심히 발굴해서 알리고 싶습니다. 최근에 학생들과 한 연구 중 하나가 우리나라 버스 안내음성이 어떻게 여성의 목소리를 갖게 되었는지를 추적한 연구였어요. 여성의 목소리가 잘 들려서 그런 것 아닐까 혹은 사람들이 선호해서 그런 것 아닐까 그동안 당연하게 여겨져 왔던 기계음성의 여성화에 선입견을 깨는 연구라고 자부합니다. 이런 연구들을 더 하고 싶고 앞에서도 질문하셨던 이공계 여성 문제에 대한 연구도 더 하고 싶어요. 여성 집단의 능력과 연대를 보여주고 또 북돋아주는 연구요.

교육자로서는 여학생과 남학생에게 각각 맞는 젠더 관점의 공학교육을 해보고 싶습니다. 일종의 성별분리 공학교육인거죠. 요즘 인기많은 TV 예능 “골 때리는 여자들”나 “노는 언니" 보시면 여자들끼리 뭉쳐 놓았을때 어떤 에너지가 생기는지 보실 수 있을 거에요. 그런 컨셉의 공학교육 해보고 싶어요. 물론 남학생 대상으로도요.

기술의 젠더편향과 관련하여 추천하고 싶은 책?

두 권 추천하겠습니다. 첫번째는 『보이지 않는 여자들』입니다. 세상의 절반인 여성들이 일상에서부터 직장, 기술, 의료, 공공, 재난 영역까지 거의 모든 영역에서 어떻게 지워졌는지 데이터로 보여주는 책입니다. 요즘 세상에 여성들이 무슨 차별을 받냐, 증거를 대야 믿겠다 하시는 분들께 추천하고요 주변에서 그런 질문을 많이 받으시는 분들께도 추천합니다.

두번째는『페미니즘 인공지능』입니다. 사실 이 책은 원래 제목은 『인공무지능(Artificial Unintelligence)』이고 책 내용에 페미니즘이 그렇게 대놓고 나와있지는 않은데 번역되면서 이렇게 나왔어요. 그래서 혹시 페미니스트가 아닌 분들은 안 읽으실까봐 일부러 추천드립니다. 외국에서 이 책은 컴퓨터 분야에 꽂히는 책이랍니다. 기술적인 내용도 있으면서 또 기술을 메타적으로 보게 해주고 통쾌하게 기술의 편향을 짚어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