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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미디어 아티스트 신기헌 작가

메타버스에서 '공유와 개방, 참여, 다양성’이라는 커먼즈의 가치가 실현될까요?

코드 매니저 김수향 2021년 08월 31일

7월 커먼즈펍 "메타버스, 가상경제, 그리고 디지털 커먼즈의 미래" 의 강연자, 코드의 회원이시기도 한 미디어 아티스트 신기헌 작가님의 메타버스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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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다양한 영역에서 테크놀로지 기반의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가고 있는 신기헌입니다. 제가 만드는 결과물은 아티스트로서의 개인 아트웍에서부터, 건축, 마케팅, 디자인, IT 등 다양한 영역의 기업과의 프로젝트 협업에 이르기까지 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편입니다. 2008년부터 세상을 돌아다니며 지식과 경험을 쌓아왔는데 이 과정에서 오픈소스의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오픈소스의 정신을 실천하고 계신 분들과 함께 커뮤니티 활동을 하기도 했구요. 저 또한 제가 가진 것들을 위키 형식의 개인 사이트를 통해 최대한 열심히 공유해왔구요. 작년을 기점으로 사이트의 업데이트를 중단하고 있지만, 이후에도 어떤 형태로든 지금까지의 노력을 이어가려고 생각 중입니다.

저는 현실과 가상, 피지컬과 디지털,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틈새와 경계로부터 새로운 발견, 새로운 경험을 전달하는 컨셉의 작업을 주로 진행해왔습니다. 미디어아트와 같은 예술 영역에서부터 마케팅, 디자인 등의 상업적인 영역, 그리고 특별히 이러한 경험들이 총망라된 테마파크라는 분야의 프로젝트들을 다수 경험해왔습니다. 최근에는 메타버스라는 키워드를 중심으로 그동안 고민하며 구상해왔던 것들을 새로운 관점에서 재정의해 나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전반적인 과정에서 IT 분야의 기술 트렌드를 촘촘히 따라가며 기술을 새롭게 바라보고 크리에이티브를 위한 하나의 재료로 활용해왔습니다. 특별히 메타버스 구현이라는 목표와 관련해 2017년부터 블록체인 기술에 주목하며 블록체인 산업 내에서 프로덕트 개발, 서비스 운영, 프로젝트 컨설팅, 엑셀러레이팅, 커뮤니티 빌딩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어떤 프로젝트들을 하시나요?

사실 마지막으로 선보인 아트웍이 2016년 런던 디자인 비엔날레 전시라 최근에는 아티스트로서의 작업이 거의 없었다고 보는 게 맞겠네요. 다만 세상을 바라보고 삶 자체로 실험하는 아티스트적인 삶의 태도는 계속해서 이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2020년 강미정, 장현경 두 분 선생님께서 집필하신 ‘한국 미디어아트의 흐름'이라는 책에 소개되기도 했으니 아직은 아티스트로서의 정체성을 대외적으로 언급해도 무리는 아닌듯합니다. 여담이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37개 팀 중 제가 거의 마지막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처음에는 인지도 순인가 싶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나이 순이더라구요. 나름 제가 이들 아티스트들 중에서는 젊은 편에 속하나 봐요. 최근에는 블록체인과 웹 기술을 활용한 플랫폼 성격의 아트웍을 하나 제작 중입니다. 정말로 세상에 선보일 수 있을지는 아직 확신하긴 어렵지만, 긍정적인 마음으로 여러 아티스트분들과 재밌게 협업하며 작업을 진행 중입니다.

메타버스와 NFT가 무엇인가요?

우선 저는 이 질문에서 메타버스와 NFT에 대해 정의 내리는 일은 생략하고자 합니다. 특히나 메타버스에 대한 정의를 언급하는 것 만으로도, 지금 수없이 제시되고 있는 메타버스에 대한 정의에 하나를 더 추가하는 일이 되고 말테니까요. 저는 메타버스에 대한 정의 내리는 것을 잠시 보류하고, 지금 우리 주위에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현상들, 실험들을 좀 더 관찰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바탕 위에 우리 모두의 상상력을 더함으로써 보다 다양한 영역의 다수 사람들의 생각이 반영된 공통의 정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메타버스와 NFT를 함께 물어보신 것으로 보아 그 둘 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있다는 전제가 이미 내포된 것 같네요. 저 또한 메타버스라는 거대한 흐름을 바라보며 그 안에서 구현될 사회, 정치, 경제 등의 필수요소를 구현하기 위한 기술적 인프라로 블록체인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입니다. NFT는 블록체인이라는 기술의 범주에서 볼 때는 하나의 세부 요소로 볼 수 있겠는데요, 그것을 단순히 기술 요소로 바라볼 때는 많은 활용도를 떠올리기 어렵지만, 긴 시간 존재해왔던 사회 내 구성원들을 필요와 욕구를 NFT와 연결하다 보면 프로세스 자체로서, 혹은 비즈니스 모델 자체로서 발전할 수 있는 지점들을 끊임없이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NFT에 대한 잠재성이 아직 극히 일부분밖에 도출되지 않았다고 생각해요. 최근의 NFT에 대한 자극적인 사건, 기록들이 계속해서 수직적으로 쌓여가는 방향 대신, 새롭고 다양한 시도들이 수평적으로 확장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메타버스의 등장에 따라 우리의 삶은 어떻게 변화할 거라 보시나요?

우리에게 더 많은 선택이 주어질 수도, 반대로 더 많은 제약이 주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가져봅니다. 인터넷의 발달과 디지털 기반 경험의 접점들이 점차 늘어남에 따라 지금의 사회 또한 여러 층위로 분절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최근 새롭게 사회에 등장하는 세대를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라고 지칭하기도 하죠. 메타버스라는 개념이 확산되는 시점에서 그렇다면 다음의 세대는 버추얼 네이티브가 되는 것일까 하는 질문을 가지게 됩니다. 메타버스의 ‘메타’라는 표현 자체가 보다 많은 것을 아우르는 최상위의 궁극적인 개념이 되어야 할 텐데, 현재 시도되고 있는 메타버스는 특정 세대의, 일정 수준의 기호, 관심, 역량을 가져야만 경험할 수 있는 제한적인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앞서의 장황한 배경을 토대로 이 질문에 대해 답하자면, 현재의 우리 사회는 한시적으로 이전보다 더욱 분절될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인 메타버스의 개념으로 발전해감에 따라 메타버스는 다시 현실의 제약과 분절을 통합하는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바라기로는지난 수천 년의 문명의 기간 동안에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던 사람과 사람 간에, 사회가 형성된 이후 발생한 사회, 정치, 경제, 문화 영역의 크고 작은 문제들이 메타버스라는 궁극의 도구를 통해 의외로 쉽게 해결될 수 있지는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져봅니다.

메타버스 세상에서의 소통 방식과 관계는 현실세계와 어떻게 다른가요?

질문 상의 ‘메타버스 세상에서의 소통 방식’이라는 표현은 어디까지나 현재 우리가 경험 가능한 메타버스 서비스나 콘텐츠를 전제로 하는 것으로 이해돼요. 일반적으로 말하는 소통이라는 것은 목적에 따라, 의도된 방식대로 정확한 목표에 도달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반면, 메타버스에서의 소통의 개념은 그보다 넓은 목적과 의도로 해석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우리가 텍스트 메시지에 기반한 소통에 있어서도 과거에 비해 이모티콘 등을 함께 활용함으로써 표현 자체가 풍성해지는 한편, 오히려 직접적인 목적성이 덜한 소통의 빈도 또한 높아졌다는 점을 비춰 생각해볼 수도 있겠습니다.

하나의 상황을 예로 가상현실 헤드셋을 착용하고 입체감 있는 3D 그래픽 기반의 가상공간에서 업무와 생산이라는 목적 하에 소통하고 있다면, 그것은 시공간의 제약을 상쇄하면서 얼마나 사실적이고 몰입감 있게 정확한 소통을 수행하느냐의 목적에 초점을 두겠죠. 반면 지하철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접속한 2D 디스플레이 기반의 가상공간에서 친구들을 만나 잡담을 나누면서 가상공간 내 게임 요소를 함께 경험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이들에게는 게임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 안에서 예기치 않게 벌어지는 사건, 모르는 사람과의 새로운 만남, 아니면 아바타의 모습으로 그저 함께 접속해 있다는 존재감 등의 모든 것이 새로운 소통의 개념 중 일부가 될 수 있겠죠. 앞서의 답에서 질문 상의 표현에 맞춰 소통이라는 단어에 초점을 두긴 했지만 메타버스 안에서는 소통, 연결, 경험 등의 개념 간의 구분이 모호한, 전에 없던 행동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이 맞지 않나 싶습니다. 이러한 점을 메타버스 만의 특성 중 하나로 볼 수도 있겠고요.

가상세계 내에서 가상경제 경험담을 말씀해주세요, 특별한 경험이 있으신지요?

가상세계의 가상경제라는 주제에 관해 이야기하면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리니지에서 획득한 아이템을 판매했던 경험을 이야기하는데, 정작 저는 리니지를 한 번도 플레이 해본 적이 없어요. 그 대신 블록체인 기술을 통해 구현된 DApp(Decentralized application)들을 누구보다도 빨리, 다양하게, 깊이 경험해왔고, 그 중에는 NFT 기반의 게임들도 여럿 포함되어 있습니다. 최근 주목받기 시작한 디센트럴랜드(Decentraland)와 같은 메타버스 플랫폼도 그 중 하나인데요, 처음 디센트럴랜드의 LAND(NFT를 통해 발행된 가상세계 내 한정된 9만 개의 대지)에 대한 경매가 진행되던 시점부터 현재까지 가상경제를 기반으로한 실험적인 플랫폼 안에서 놀라운 경험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리니지에 비유하자면 처음 MMORPG라는 장르의 게임 개발이 공개 시점으로부터 수많은 유저들의 유구한 시간과 노력이 쌓인 지금에 이르는 전체 시간을 함께 했다고 볼 수 있겠죠. 당시 구매해서 현재도 보유 중인 LAND는 NFT 뱅크와 같은 NFT 자산 평가 서비스를 통해 확인했을 때, 현재 추정 수익률이 10,000% 정도로 표시되네요. 물론 이 중에는 실제로 일부를 판매해서 수익을 실현한 경우도 있습니다. 현실세계에서는 일어나기 쉽지 않은 가상세계에서의 특별한 경험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네요.

아직까지는 가상경제 활동이 다소 생소합니다. 작가님과 같은 아티스트나 창작자들이 메타버스나 가상경제를 더 빨리 접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데, 주로 어떤 분들(연령층, 공통 관심사 등)께서 가상경제 활동을 활발하게 하신다고 보시는지요?

질문 상에 언급된 한 축의 집단과 더불어, 저는 정반대 축의 또 다른 집단을 연결해서 설명하고 싶습니다. 아티스트나 창작자들이 생각하는 가치 기준과 행동 성향이 전통적인 경제, 금융의 관점에서 보면 비이성적, 비효율적이라고 볼 때, 오히려 극단적으로 이성적이고 효율을 추구하는 경제, 금융 전문가 집단 또한 그 안에 뒤섞여 있는 모습을 관찰하게 됩니다. 저의 판단으로는 이성과 비이성, 효율과 비효율이 직접적으로 부딪히는 가운데 어느 한쪽이 유리한 상황이 아닌, 대등하게 경쟁하는 가상경제의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인해 오히려 높은 유동성과 변동성이 발생하고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변동성이 또 현실세계의 수많은 이슈를 낳으며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그들이 다시 가상경제로 유입되는 순환의 흐름을 보이고요. 이후에 이슈를 따라 가상경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 신규 유입자들은 오히려 특정 성향에 편중되어 있는 초기 관심자들과 달리 다양한 성향과 배경 내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고 봅니다. 아직은 분석 가능한 지표가 많지 않은 탓에 저 또한 변화의 흐름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 입장이네요.

메타버스에서 '공유와 개방, 참여, 다양성’이라는 커먼즈의 가치가 실현될까요?

최근 저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주제입니다. 인터넷 기술의 발전 가운데 계속적으로 추구되고 있는 공유, 개방, 참여, 다양성이라는 보편적 가치가 과연 메타버스와 같은 가상세계를 통해 한 단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까에 대한 질문은 메타버스가 가진 잠재성을 놓고 봤을 때, 매우 그럴 수도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아직은 양방향의 열린 미래를 전망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개인적인 전망은 특정 주체가 메타버스를 빠르게 이해하고 활용함으로써 전체 시장 내 지배력을 선점하는 흐름이 과거 IT의 역사의 반복과 같이 또 다시 재현될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이를 견제하려는 노력 또한 항상 함께 존재해왔다는 점, 그것을 통해 시장 내 일정 수준에서 균형점을 찾아왔다는 점을 떠올려보면 그 대립의 결과로서의 균형점이 정착하게 되는 지점이 어디가 될지에 대해서는 앞으로의 흐름을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과거의 역사와 비교해 달라질 점을 생각해본다면, 과거에는 독점적 지배력을 견제하는 역할이 국가, 기관, 전문가 집단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면, 앞으로의 가상세계에서는 커먼즈의 보편적 가치에 동의하는 일반 참여자, 사용자들이 그 주체가 될 수 있겠다는 기대는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활동가들이 오프라인으로부터 Web 1.0, 2.0을 지나 메타버스와 같은 Web 3.0 기반의 가상세계로 옮겨가 보다 많은 연결과 협업을 이뤄가는 것이죠. 이에 대한 하나의 근거로 현재 메타버스에서 중요한 사회, 정치, 경제의 기술적 인프라 역할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되는 블록체인 기술이 인공지능이나 사물인터넷 등의 기술처럼 사람을 배제하는 방향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마지막에는 오히려 사람의 참여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떠올려볼 수 있겠습니다. 근본적 방향에 있어 큰 차이가 있죠. 커먼즈의 가치 실현을 위한 대립의 최종 균형점이 어느 위치에 정착하게 될지를 생각해볼 때, 저는 궁극적으로 이러한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려 도태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과거 전례 없는 정도로 커먼즈의 가치가 확산되어, 극단적으로는 더 이상 ‘커먼즈’라는 구분 자체가 필요 없는 세상을 상상해볼 수 있다면 좋겠네요.

코드의 후원회원으로서 코드에 기대하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코드의 전신인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코리아 시절부터 여러 활동가분들과 교류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받아왔고, 그때나 지금이나 그에 대한 감사한 마음이 아주 큽니다. 코드라는 이름으로 현재 진행 중이신 활동들을 멀리서나마, 때로는 지금처럼 조금 더 가까이에서 응원하며 코드가 추구하는 가치가 현실세계를 넘어 가상세계로까지 널리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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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헌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