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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근의 기록: 발포어가의 비밀 손님

박상현 2018년 03월 21일

이스라엘 예루살렘의 발포어가(Balfour 街)에는 주위의 다른 건물들과 달리 삼엄한 경비를 받는 주택이 하나 있다. 이스라엘의 건국 이후로 20대의 젊은이들이 이 주택에 자주 드나들어왔지만, 일반인들은그 젊은이들이 누구인지, 왜 몰래 그 집을 드나드는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바로 이스라엘의 총리 공관, 아니 사택이다. 영국 정치의 중요한 결정이 버킹엄궁이 아닌 다우닝가 10번지 총리공관에서 이루어지듯, 현대국가로서의 이스라엘 정치의 핵심과 같은 곳이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총리의 집을 몰래 드나들던 젊은이들은 누구일까?

암살작전의 극비 결정과정

이스라엘은 건국 이후로 수많은 암살을 수행했다. 1940년대 영국의 식민통치를 담당하던 공무원부터 헤즈볼라, 팔레스타인해방기구 까지, 이스라엘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는 많은 요인들을 암살했다. 무려 2천7백 여건에 달하는 "암살작전"은 대부분 이스라엘의 첩보기관이 모사드(Mossad: הַמוֹסָד)에 의해 수행되었다. 영화 '뮌헨(Munich)'에 나오는 사건도 그 중 하나이다.

직역하면 단순히 '기관(institution)'이라는 뜻의 모사드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첩보기관들과는 다른 특이한 결정구조를 가지고 있다. 최근 출간된 책, 'Rise and Kill First'의 저자 로넨 버그먼(Ronen Bergman)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암살작전의 결정은 극비리에 내려지고, 그 절차도 암살을 수행할 젊은 모사드 요원(들)과 이스라엘 총리의 직접 면담이 전부이다. 이스라엘 밖에서, 그리고 때로는 적지에서 이뤄지는 암살작전을 수행하는 요원들은 아무래도 젊을 수 밖에 없는데, 대개 30세가 채 되지 않은, 심지어 20대 초반의 요원들은 자신의 작전의 필요성을 총리에게 면담으로 직접 설명하고 그 자리에서 승인을 받았다. 아무런 서류도 남지 않고, 총리와 요원들 외에는 아는 사람도 없는, 그야말로 극비의 작전은 그래서 가능했던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발포어가의 그 집으로 몰래 찾아와 벤 구리온(David Ben-Gurion)이나 골다 메이어(Golda Meir) 같은 전설적인 총리들에게 "OOO를 죽이지 않으면 이스라엘이 위험에 빠진다"고 역설하던 젊은 모사드 요원들 중에는 훗날 그 집의 주인이 되어 암살작전을 승인하게 된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이다. 에후드 바락(Ehud Barak)이나 벤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같은 총리들이 그들이다.

프로퍼블리카의 데이터 장터

미국 비영리 탐사 저널리즘의 대명사, 프로퍼블리카(ProPublica)의 웹사이트에는 '데이터 스토어(Data Store)'라는 곳이 있다. 거기에는 프로퍼블리카가 우리식으로 말하면 '정보공개청구' 과정 등을 통해 얻어낸 데이터들이 CSV파일 등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으며, 말이 스토어이지, 누구나 무료로 데이터를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 정치와 국방, 경제, 교통, 환경, 의료 등 다양한 분야의 정보들이 날 것 그대로 분석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띄는 파일있다. 바로 트럼프 행정부 출범 후 백악관을 드나든 모든 사람들의 이름과 소속이 기록된 'White House Complex Visitor Logs'이다. 출범 전부터 온갖 비리 의혹과 인사문제로 비판을 받아온 트럼프 정부이기 때문에 기자들에게는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서 언제 누구를 만났는지 알 수 있는 것은 아주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즉, 권력에 대한 투명한 감시가 가능한 중요한 장치인 것이다.

그렇다면 백악관은 언제부터 방문자 기록을 (영장없이도) 전부 일반에 공개했을까? 바로 오바마 행정부 때 부터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오바마가 얼마나 훌륭한 대통령이었는지 감탄할 사람들도 있겠지만, 속단은 금물이다. 원래 오바마 백악관은 이전의 다른 정권과 마찬가지로 대통령 공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의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정부의 투명성을 요구하는 단체들이 무려 4건의 소송을 제기하자 무릎을 꿇고 대통령이 누구를 언제 만났는지 낱낱이 밝히게 된 것이다.

정보의 투명성, 정부의 투명성

사람들은 누구나 권력에 접근하고 싶어한다. 자신에게 공식적인 권력이 없더라도, 권력자에게 직접적으로 다가갈 수 있는 사람은 비공식적인 권력을 휘두를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익히 보아왔다. 그렇기 때문에 최고 권력자에게 접근(access)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아는 것이 투명한 정부로 가는 중요한 주춧돌이 된다.

물론 2천7백 건의 암살작전이 극비리에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지금의 이스라엘은 남아있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발포어 거리의 총리공관을 방문한 젊은 모사드 요원들은 익명으로 남아있어야 한다고 믿을 수도 있다. 하지만 'Rise and Kill First' 저자 버그먼의 생각은 다르다.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은 항상 그렇게 총리에게 정치, 외교적인 부담이 되지 않는 극비의 해결책을 제공해왔고, 그 덕분에 많은 문제들이 간단하게 해결되는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그런 해결책은 더 큰 문제를 낳았을 뿐 아니라, 아무리 힘들어도 정치적으로, 공개적으로 협상하고 해결해야했던 진짜 문제들을 덮어버리는 미봉책이었고, 궁극적으로 그들에게 정치적인 재난(disastrous political failure)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게 조용하고 비밀리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 때 정치인들은 문제의 해결을 회피하고 오히려 더 키워왔다는 것이 버그먼의 주장이다. 그리고 백악관 방문자기록 공개소송이 주는 교훈이 하나 있다면, 어떤 정부도 자발적으로 투명해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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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photo: Steven Spielberg, 'Munich' (2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