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s

8월 첫째 주, 우리 눈에 띈 글들

소수의 사람들이 쓰던 영어의 지구 정복과정, 거대 제약사에 반기를 들고 직접 약을 제작하는 아나키스트 그룹, 실리콘밸리로 몰려드는 세계의 스파이들

박상현 2018년 08월 09일

1. 조작된 게임 연구가 남긴 긴 파장

Two Researchers Challenged a Scientific Study About Violent Video Games—and Took a Hit for Being Right

아마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지만, 2012년에 흥미로운 연구결과 한 과학저널에 발표되었다. 총으로 사람을 죽이는 슈팅 게임을 하는 사람들은 실제 총으로도 표적이 되는 마네킹의 머리를 맞춘다는 연구로, 발표 직후부터 비디오 게임의 폭력성을 경고하는 사람들이 주장의 근거로 많이 이용했다. 하지만, 얼마 후 연구자 중 한 사람이 원하는 결론을 위해 데이터를 조작했음이 밝혀졌고, 논문은 게재가 철회되었으며, 연구자는 박사학위를 취소 당했다.

문제는 오히려 그 다음부터 커지기 시작했다. 데이터의 오류/조작 가능성을 제기한 학자들이 거꾸로 대학으로 부터 경고를 받으며 법적인 싸움에 말려들기 시작한 것. 문제 논문의 조사가 늦어지는 동안 조작된 논문이 여기저기에서 인용되는 걸 참다못한 학자들이 수사 중인 내용을 공개했고, 학교 당국은 그것을 문제삼아 진실을 밝히려던 학자들을 징계하려 한 것이다.

결국 조작을 지적한 학자들은 징계를 면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무려 3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그 과정을 객관적으로 추적한 이 기사를 보면 애초에 데이터를 조작한 연구자 외에는 "악인"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 순간의 부정, 한 번의 연구조작을 바로잡기 위해 학교와 연구기관, 학자들의 귀중한 시간과 자원이 얼마나 낭비되는지 잘 보여준다. 그럼에도 내가 기사를 읽으면서 감탄스러웠던 것은, 느려도 절차에 따라 부정을 입증하고 바로 잡으려는 관계자들의 모습이었다.

2. 소수가 쓰던 영어는 어떻게 지구를 정복했나

Behemoth, bully, thief: how the English language is taking over the planet
언어학자들은 전세계 언어를 사용자의 규모에 따라 4등급으로 나눈다. 1단계는 주변어. 세계 언어의 98%를 차지하지만, 사용자는 세계인구의 10%도 되지 않는다. 2단계는 중앙어, 혹은 민족어. 1억 명 미만이 사용하는 언어로, 대개 자국 국경 이내에서만 사용된다. 한국어도 여기에 속한다. 3단계는 초중앙어(supercentral language)로, 아랍어, 프랑스어, 일본어, 러시아어, 스페인어 등이 속하며 영어도 여기에 속한다.

하지만, 4단계(hypercentral language)는 특별하다. 특정 언어를 사용하는 원어민(native speaker)의 숫자가 많은 언어가 아니라, 그 언어를 할 줄 아는 비모국어(non-native) 사용자의 숫자가 가장 많은 언어이며, 바로 영어가 그 지위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보급과 함께 영어는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최상위 언어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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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디언에 등장한 이 기사는 사라지는 작은 언어들에 대한 단순한 애가(elegy)를 넘어서, 영어가 어떻게 각 문화권에서 때로는 해방자로, 때로는 압제자로 존재하는지, 그리고 영어를 사용할 때 사람들은 어떻게 다른 성격이 되고, 다른 세계관을 갖게 되는지 흥미롭게 설명한다. 특히 중국작가 구오 샤오루郭小橹가 영어에 대해 하는 말은 흥미롭다: "(중국처럼) 집단중심적인 사회에서 자란 사람이 (영어처럼) 끊임없이 일인칭 단수로 이야기하는 사회에 어떻게 적응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 중국어를 배우면서 중국어에 단복수 구분이 없다는 사실에 놀라던 미국학생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3. 거대 제약사에 반기를 든 아나키스트들

Meet the Anarchists Making Their Own Medicine
한 알에 수십 만 원 씩 하는 약을 복용해야 살 수 있는데, 당신에게는 그만한 돈이 없다면? 그런데 누군가 같은 약을 몇 백 원에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면? 마더보드Motherboard의 이 기사는 초대형 제약사에게서 약을 만드는 방법을 가져다가 환자들에게 직접 약을 제조하는 법을 가르쳐주는 아나키스트, 혹은 프로메테우스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언뜻 들으면 마치 미국 드라마 '브레이킹 배드Breaking Bad'의 주인공들 처럼 들리지만, 이들 "해커"들은 교묘하게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약을 만들어 팔면 불법이지만, 직접 만들어 팔지 않고 다만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기만 하기 때문에 법에 저촉되지 않는다. 제조법은? 특허를 신청할 때 공개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들여다볼 수 있다. 다만, 전문적인 지식이고, 제조에 필요한 물질을 구하는 방법을 일반인들은 모르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한데, 이들은 바로 그 부분을 도와줄 뿐 아니라, 제조에 필요한 도구도 3D 프린팅 등을 통해 직접 만들 수 있게 해준다.

물론 문제는 산적해 있다. 정말로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지, 대형 로펌과 로비스트를 거느린 제약회사들이 과연 가만 두고 볼 것인지.. 하지만 그들은 아주 단순하게 묻는다: "당신은 법을 어기고 목숨을 건지고 싶은가, 아니면 법을 지키며 죽고 싶은가?" 그들에게는 약을 직접 제조하는 것 보다, 비싼 약을 살 수 없다는 이유로 사람을 죽게 놔두는 것이 훨씬 더 큰 불법이고, 죄라고 믿는다. 공유지(commons)의 관점에서도 아주 흥미로운 기사다.

4. 실리콘밸리가 스파이들의 소굴된 사연

How Silicon Valley Became a Den of Spies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와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으로 실리콘밸리를 통한 외국 기관의 정보수집 활동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가운데, 폴리티코Politico가 실리콘밸리가 미국 내 외국 스파이들의 소굴이 된 사연을 피처기사로 자세히 정리했다. 기사에 따르면 외국 스파이들이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1) 세계 최고의 기술이 있고 2) 모두가 정보를 공유하는 개방적인 문화를 갖고 있으며 3) 전세계 사람들이 모이는 코스모폴리탄적인 환경이기 때문에 냉전 시절부터 러시아 스파이들이 들끓던 곳이 실리콘밸리다.

하지만 냉전의 종식과 함께 사라졌던 러시아 스파이들이 푸틴의 집권과 함께 대거 돌아왔고, 무엇보다 중국의 스파이 활동이 급증했다는 것. 하지만 소위 "미인계"(미국에서는 흔히 'honeypot' 수법이라고들 한다)를 동원하는 등의 영화 속 스파이 활동을 하는 러시아와 달리, 중국의 스파이 활동은 유학생이나 테크 기업에서 일하는 중국계를 동원한다는 것. 특히 이 과정에서 중국정부는 중국정부의 장학금 등을 적절히 활용하는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성화가 샌프란시스코를 지날 때 일어났던 친중국, 반중국 시위대의 충돌사태 때는 중국 정부가 J비자로 미국에 거주하던 중국인 6천-8천 명을 미 전역에서 그런 방법으로 동원하기도 했다.

기사는 실리콘밸리 내 스파이와 해킹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나라로 러시아와 중국에 이어 한국과 이스라엘을 지목한다.

5. 사망한 유명 아티스트와 유산 관리인

How Robert Indiana’s Caretaker Came to Control His Artistic Legacy
맨해튼 한 복판에 놓인 "LOVE"라는 글자 조각으로 유명한 팝 아티스트 로버트 인디애나Robert Indiana가 지난 5월에 세상을 떠났다. 비록 말년에는 팝아트의 인기는 많이 줄어들었지만, 팝아트의 아이콘과 같은 작품을 만든 대표 작가이기 때문에 여전히 대중적인 관심을 끌고 있는 작가. 하지만, 항상 그렇듯 대중의 관심이 있는 곳에는 항상 돈이 몰리고, 특히 작가가 중병에 걸리거나 세상을 떠날 때면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자신의 지분을 확보하려고 암투를 벌인다. 뉴욕타임즈의 이 기사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미술과는 전혀 거리간 먼 한 남자다. 아티스트가 말년에 머물렀던 미국 북동부 메인 주의 외딴 섬에서 집안 일을 비롯한 허드렛일을 도와주던 제이미 토머스Jamie Thomas라는 이 남자는 아티스트가 남긴 유산의 관리자가 된 것이다.

그의 이야기는 어느 쪽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아무도 가까이 하려하지 않던 성격 고약한 아티스트 옆을 충실하게 지키며 그의 말년을 지켰던 사람에게 유산 관리를 맡긴 아름다운 스토리일 수도 있지만, 영화 '미저리Misery'처럼 아무도 아티스트 곁에 다가가지 못하도록 막은 후에 정신이 혼미한 그에게서 유산관리 권한을 위임하는 유언장을 쓰게한 공포영화에 가까울 수도 있다. (인디애나의 PR담당자는 토머스가 아티스트를 학대했다고 신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다. 악당은 그 관리자만이 아닐 수 있고,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도 분명하지 않다. 한국의 아티스트 천경자씨의 말년에서도 목격했듯, 작품의 위변조 혐의까지 등장한다. 더욱 일을 복잡하게 만드는 것은 로버트 인디애나가 작품의 대량생산을 찬양한 팝아트 운동의 일원이었다는 것. (기사에는 심지어 작가 서명을 로봇이 하는 장면도 등장한다). 이 이야기는 '미저리'의 작가 스티븐 킹이 소설로 써도 완벽한 소재인데, 흥미로운 건 스티븐 킹이 메인 주에 사는 것으로 유명하다는 사실. 춥고 인구가 적은 메인 주의 분위기가 그에게 영감을 주었다고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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