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s

20/05/02 우리 눈에 띈 글들

비극이 개인적인 내러티브가 아닌 통계상의 숫자로 축소될 때 우리는 그 의미를 쉽게 망각하게 된다.

박상현 2020년 05월 03일

이번 팬데믹으로 다시 우리의 관심 영역으로 들어온 1918년 스페인 독감은 전세계에서 그렇게 많은 사망자를 냈다고 하는데, 정작 한반도에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지 우리는 역사책에서 배운 기억이 없다. 하지만 이 독감은 당시 우리나라에도 분명히 상륙했고, 엄청나게 많은 사망자가 나왔다. 당시 조선총독부 기록에 따르면 인구의 38%가 감염되었고, 0.8%에 해당하는 14만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지금 한국(남한)에서 0.8%가 사망했다면 무려 40만 명이 사망했다고 볼 수 있는 무서운 숫자다. 그런데 왜 우리는 이 일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지 않을까?

그런데 사실 상황은 서구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들은 세계 1, 2차 대전에 대해서는 많은 기록이 남았고, 지금도 많은 콘텐츠가 만들어지고 있지만, 정작 훨씬 더 많은 희생자를 낸 팬데믹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세히 아는 것이 없다. 마리엘라 스케리는 전쟁에서의 죽음은 흔히 개인적인 내러티브로 알려지지만, 팬데믹으로 인한 죽음은 집단적 이야기(collective story)로만 전해질 뿐 개인적인 내러티브는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왜일까? 스케리에 따르면 바이러스로 인한 사망은 끔찍한 일인 동시에 너무나 일상적인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번 팬데믹 초기에도 나타난 주장이지만 "보통 독감과 다르지 않다" "노인들만 죽는다"는 담론은 '그들은 어차피 죽을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바닥에 깔고 있다. 바이러스로 인한 죽음은 일상적인 죽음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사실이 아님은 이제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죽음은 일상적인 죽음이 아니며, 아마도 지금 살아있는 세대가 겪게 될 가장 큰 비극이다. 그리고 이 비극은 날로 늘어나는 사망자 숫자 통계로만은 설명할 수 없고, 그렇게 설명되어서도 안된다. 비극이 통계상의 숫자로 축소될 때 우리는 그 의미를 쉽게 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 눈에 띈 글들은 두 번에 걸쳐 코로나19 팬데믹 속에 숨어있는 개인들의 이야기를 골라서 소개한다. 팬데믹이 21세기 인류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쳐줄 수 있다면 그것은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서 전달될 것이기 때문이다.

1. 어느 우한 주민의 증언

Coronavirus Lockdown Is A 'Living Hell'
중국 정부가 코로나19 발생 사실을 숨기다가 급작스럽게 봉쇄령을 내린 사실은 외국에도 알려졌지만, 정작 주민들이 그 조치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 글은 우한 주민의 솔직한 심정이 중국 밖으로 알려진 최초의 케이스이자, 가장 유명한 글이다.

이 글이 유명해진 이유는 글쓴이가 단순히 현지의 상황만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중국 정부에 대한 큰 신뢰를 갖고 있던 주민이 배신감을 넘어 민주주의의 가치를 깨닫게 되는 과정이 담겨있기 때문. "나는 이제 그게 환상이었음을 깨닫는다. 발언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 정치체제, 국민에게 진실을 알리지 않는 정치체제 하에서 안정된 삶은 허락되지 않는다." 미국의 공영라디오방송이 소개한 이 내용을 미국인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2. 뉴욕타임즈 기자의 경험

What I Learned When My Husband Got Sick With Coronavirus
뉴욕의 방 두 개 짜리 작은 아파트에서 남편과 함께 열여섯살 짜리 딸을 키우는 뉴욕타임즈 기자가 취재내용이 아닌 개인적인 경험을 기록해서 큰 반향을 일으켰던 글이다. 아주 건강했던 운동광 남편이 뉴욕에 퍼진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된 후 일어난 일들을 차근차근 기록하고, 남편의 상태가 악화되는 과정에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심경의 변화를 담았다.

특히 좁은 뉴욕의 아파트에서 남편의 바이러스가 자신과 딸아이에게 옮기지 않도록 애쓰는 모습은 딱할 정도인데, 전세계에서 코로나19 사망자가 가장 많이 나온 도시의 주민들이 어떻게 이 시기를 통과하는지가 수려한 글솜씨로 생생하게 전달한다. 이 글은 팟캐스트에서 나레이션을 통해서 들을 수도 있는데, 특히 마지막 문단에서는 당시만 해도 아직 최악의 단계에 이르지 않은 뉴욕의 모습이 마치 공포영화의 시작처럼 무섭게 다가온다.

3. 응급실 의사의 일기

An ER Doctor’s Diary Of Three Brutal Weeks Fighting COVID-19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내용이자, 가장 좋았던 글이다. 뉴욕시의 한 대형병원에서 일하는 응급실 의사가 근무 중에 일어나는 일들을 자신의 단상과 함께 기록한 짧은 일기. 죽음을 앞둔 환자를 대하는 그의 심정, 최악의 피해를 입은 지역의 응급실이 얼마나 전쟁터 처럼 돌아가는 모습 등이 영화처럼 펼쳐진다. 응급실 의사의 글솜씨가 이렇게 뛰어나다는 사실이 놀랍기도 하고 왠지 부럽기도 하다.

"6일 전만 해도 건강하고 멀쩡하던 사람에게 당신은 하루 이틀 후에 죽을 수 있으니 우리가 얼마나 공격적으로 치료하기를 원하느냐고 묻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고통을 각오하고 생명 유지 장치에 의존해서 한 번 싸워볼 것인지, 아니면 바로 평안하게 삶을 마무리할 것인지."

4. 내 남자친구가 죽었다

My Boyfriend Died of COVID-19
우한에서 죽어가는 남자친구와 주고 받은 내용을 위챗에 기록했다가 바이럴이 난 글을 '애틀랜틱'에서 비디오로 만들었다. 글로벌 팬데믹에서 왜 개인들의 내러티브를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지 보여주는 영상으로, 클릭하기 전에 울 각오를 해야 한다.

Cover art by cromaconceptovisual from Pixaby


cov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