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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대란에 대처한 C.O.D.E.의 경험

E Editorial Team 2020년 04월 06일

[글쓴이 : 오원석, 사단법인 코드 이사]

코로나19 감염 초기 미국과 유럽 등은 마스크 착용을 기피하거나 마스크 착용 자체는 중요한 대응 조치가 아님을 연일 강조하였고 세계보건기구(WHO)조차도 코로나19 예방에 일반 사람들까지 마스크를 쓸 필요는 없다고 강조하였다. WHO 또한 마스크가 바이러스 차단 효과가 크지 않으며 마스크로 인해 오히려 얼굴에 손이 자주 가게 됨으로써 감염위험을 더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하였다.

하지만 대한민국 정부 그리고 질병관리본부는 2020년 1월 20일 코로나19 관련 첫 감염 유입 환자 확진 후 감염병 위기 경보 수준을 '관심'에서 '주의' 단계로 상향 조정하였으며 중앙방역대책본부와 지자체 대책반을 가동해 지역사회 감시와 대응을 강화하였다. 감염병 초기부터 지역사회 감염 대응을 위해 모든 국민에게 마스크 착용을 당부하였으며 마스크 부족과 사재기 방지 등을 위해 '공적 마스크 판매 제도'를 꺼내 들었다.

공적 마스크 판매제도는 정부의 개입을 통해 모든 국민에게 형평성에 맞는 마스크 보급을 위한 노력이다. 이를 위해 전국의 약국과 농협 하나로 마트, 우체국에 마스크를 배분하여 보급하고 개인의 신원을 확인하여 주당 1인에 2매씩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한 제도이다. 줄서기 방지와 약국 등의 혼잡을 막기 위해 5부제 제도를 도입하였고 심평원의 '병의원·약국 중복구매 확인 시스템(MUR)'을 활용하여 구매자의 신원을 확인한 후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도록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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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시작은 여기부터다.

공적 마스크 판매제도 도입을 결정한 후 심평원과 식약처, 전국의 약국은 좋은 취지의 제도임에도 불구하고 걱정이 앞섰다. 심평원은 해당 시스템이 온전하게 동작할지 걱정하였고, 식약처는 마스크의 배분과 보급, 일선 약국의 대응에 대해 걱정하였으며, 전국의 2만 6천여 개에 달하는 약국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부터 걱정하였다. 정부의 개입으로 배분되고 보급되는 약국의 공적 마스크를 구매하기 위해 국민들이 약국 앞에 줄을 서게 되면 사회적 거리두기에 위배되는 현상이기에 이를 해결하기 위한 솔루션도 필요했다. 이 시점에 공공데이터와 시빅해커가 등장한다.

공공데이터와 시빅해킹에 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공공데이터란 정부가 정부 업무를 위해 생산한 데이터를 민간에서도 활용할 수 있도록 공개한 것이며 시빅해킹은 디지털 자원 등을 활용해 시민 스스로 사회문제를 해결해 가는 것을 일컫는다.

공적 마스크 구매를 위해 약국 앞에 국민이 줄을 서게 되는 사회문제를 MUR 시스템에서 관리되는 마스크 구매 현황과 재고 현황 정보, 즉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어느 정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럿이 고민했다. MUR 시스템을 담당하는 심평원, 공공데이터를 담당하는 행안부, 마스크 배분을 담당하는 식약처 등이 이에 포함되었다. 약사회, 기재부, 과기부 등도 함께했다. 그리고 시빅해커라 불리는 개발자들이 동참했다.

3월 9일 공적 마스크 판매제도 첫 시행을 앞두고 이들이 분주해지기 시작했다. 정부와 시빅해커, 민간이 협력하기 시작했다. 그 일련의 과정들이 일사불란했다. 단군 이래 공공데이터와 시빅해킹을 위해 이렇게 일사불란하게 정부와 민간이 협력했던 경우가 있었나 싶었을 정도였다.

정부는 공적 마스크 재고 정보를 공공데이터로 공개하기 위한 임무에 착수했으며 민간 서비스 사업자와 시빅해커들은 공공데이터를 활용해 공적 마스크 재고 정보 알림 서비스 개발에 착수했다. 이것이 불과 3월 9일 공적마스크 판매 첫 시행을 앞두고 4~5일 정도 전 즈음인 3월 5일, 6일 경이다. 열정은 뜨거웠고 협력은 일사불란했기에 4일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었다.

3월 6일 공적 마스크 재고정보 알림 서비스를 위한 OpenAPI 명세가 최초로 개발자들에게 전달되었으며 개발자들은 아직 공개되지도 않은 OpenAPI 서비스를 더미데이터로 테스트하기 시작했다. 더미데이터란 실제 데이터는 아니지만 가상으로 형상화한 데이터이다. 아직 공개되지도 않은 공공데이터를 더미데이터로 테스트하는 것은 아주 드문 경우이다. 그렇게 3월 6일이 지나고 3월 7일 토요일이 되었다. 그 다음 주 월요일이면 공적 마스크 판매제도가 시행되므로 정부도 개발자도 주말에 쉴 수는 없었다. 아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금요일 밤은 물론 토요일, 일요일을 공적 마스크 판매 알림 서비스 개시를 위해 그렇게 주말을 보냈다.

개발자들은 슬랙과 카카오톡 등을 통해 아직 공개도 안 된 OpenAPI 서비스에 대해 서로 도와가며 개발을 했고 정부는 진행 상황을 계속해서 전달해 주었다. 3월 9일 공적마스크 판매 시행과 함께 알림 서비스도 같이 출시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그런 협력이 필요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와 민간의 협의로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결정되었다.

  • 정부가 단방향으로 OpenAPI 명세나 방식을 정해서 배포하지 않고 그것을 사용할 개발자와 시빅해커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였다.
  • 현장에 있는 약사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한 의견을 나누었다. 그 결과로 약국의 전화번호는 반영하지 않기로 하였다.
  • 각각의 서비스에 일관성 있는 표현을 위해 재고 현황을 녹색(100개 이상), 주황색(30~100개), 빨간색(2~30개), 회색(2개 미만)으로 구분하여 표시하기로 협의하였다.

그렇게 3월 9일 월요일이 되었고 공적 마스크 판매제도는 시행되었다.시행 초기에는 공적 마스크 구매를 위해 구매자들은 약국 앞에 줄을 설 수밖에 없었고 약국들도 허둥지둥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에겐 생소한 판매제도였고 제도를 알릴 시간도, 학습할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선 약국들도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렇지만 3일이 지나고 5일이 지나면서 모두들 적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약국을 불신하던 구매들자들 도 점차 시스템을 신뢰하기 시작했고, 약사들도 제도에 익숙해졌으며, 알림 서비스를 활용하면서 줄을 서는 현상도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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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법인 코드도 이 대열에 합류하여 '마스크요(https://maskyo.kr)'라는 서비스를 출시했다. 또한 개발자와 정부의 의견을 서로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며 다양한 의사결정에 참여하였다.

현재 공적 마스크 제도는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듯하다. 전국의 약사들이 약사회를 통해 공적 마스크 알림 서비스로 인해 줄서는 사람들이 적어지고 있다는 의견을 주고 있다. 구매자들 또한 즐겨 찾던 약국만이 아닌 주변의 다른 약국들을 찾아서 마스크를 구매할 수 있어 도움이 된다는 의견을 주고 있다. 직장 근처나 현재 위치에서의 주변 약국들을 이용하면서 마스크 구매를 편리하게 할 수 있어 좋다는 의견도 많다.

다만 아직은 모든 국민의 마스크 구매에 대한 불편함을 완전히 없앴다고는 볼 수 없다. 지역별 특성에 대한 차이를 줄일 수 있는 방법, 직접 약국에 가지 못하는 형편에 있는 취약계층에 대한 고려 등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이다. 또한 마스크 판매에 대한 누적 데이터 분석과 지역별 특성 데이터 분석 등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있다. 여전히 많은 시빅해커들이 지금 이 시간에도 고민하고 있다. 서비스 준비 때와 마찬가지로 지금도 계속 정부와 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하고 있다.

사단법인 코드는 전신인 CCKorea 시절부터 공공데이터의 개방과 활용에 관심을 두고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8년 전인 2012년에 처음으로 ‘공공데이터 캠프’라는 해커톤을 통해 공공데이터의 가치와 활용을 강조하였고, 이후로 ‘코드나무’라는 시빅해킹 커뮤니티를 운영하였다. ‘고위공직자 재산공개,’ ‘우리지역 채무탈출’ 등 다양한 시각의 시빅해킹 활동을 이어나갔으며 서울이 가진 문제를 해결해보기 위해 모인 서울 시민들의 커뮤니티인 ‘코드포서울’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더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였다.

하지만 한동안은 활동이 좀 부진했던 것도 사실이다. 몇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아쉬웠던 점은 반복되는 실망과 그로 인한 힘빠짐이었다. 시빅해커로서의 열정과 열린 정부에 대한 바람으로 시작했던 여러 프로젝트들이 기대와 다르게 정부와 자꾸만 엇박자가 나고 소통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서 중단되거나 좌절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공공데이터의 활용과 열린정부의 실현은 단지 시민들의 참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파트너로서의 정부와의 협업이 중요한데도 때로는 시민들의 일방적인 외침으로 끝났고, 이러한 경험들이 반복되면서 시빅해킹에 대한 회의가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이번 공적 마스크 프로젝트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지금처럼 국민과 사회의 안전이 위협받는 급박한 상황에서 정부와 시민이 서로를 믿고 협력하며 우리가 당면한 문제를 시민들 스스로 해결하고자 나섰고 정부는 이를 기꺼이 지원하였다. 정부의 투명성과 공공데이터의 개방, 활용이 왜 중요한지 다시 한번 실감할 수 있었고, 시빅해커들의 열정과 역량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아마도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많은 시민들이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그래, 이렇게 해야지’라는 감회를 여러 번 느꼈을 것이다. 정부 역시 많은 시민과 개발자, 시빅해커들과 소통하면서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시빅해킹 되겠다. 할 수 있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부디 이 느낌과 이 정신, 이 고민과 노력이 지속될 수 있기를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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