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mmons

[인터뷰] 지속가능한 미디어 실험, '얼룩소(alookso)' 정혜승 대표

"얼룩소는 중요한 의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론장을 구축하고, 지속가능한 미디어 생태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코드 매니저 김수향 2021년 10월 19일

기자, 인터넷 기업 대외협력, 정책 담당자, 청와대 비서관, 작가, 포럼 프로그래머을 거쳐 현재 미디어 스타트업 ‘얼룩소’의 대표로 활동하고 계신 정혜승 님을 인터뷰했습니다.

cover

얼룩소가 무엇인가요?

얼룩소(alookso)는 서로 다른 관점을 나누는 미디어입니다. 「중요한 의제에 대해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론장을 구축하고, 지속가능한 미디어 생태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람들이 모여 얼룩소 회사를 만들었습니다.

처음 시작한 프로젝트는 쏘프라이즈(soprize)입니다. '데이터 기반 글쓰기 경연’인 쏘프라이즈를 시도한 이유는 간단해요. 우리는 어느 순간 굉장히 자극적인 언어로 ‘따옴표 저널리즘’이라는 데에 갇혀 있어요. 주장은 난무하는데 우리 사회가 마주해야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파악하는데 너무 근거가 부족한 것 아닐까, 그러면 데이터가 우리 사회의 문제를 발견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 데이터를 통해서 상황이 이렇구나, 그럼 어디서 해법을 찾을 수 있을까 모색할 수 있죠. 그런데 해외에서 데이터 저널리즘을 잘한다는 것에 비하면 우리는 척박합니다. 그래서 데이터 기반 글쓰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어딘가에 있을 텐데 그 사람들을 어떻게 모아볼까 고민하다가 쏘프라이즈를 시작해봤어요. 좋은 글이 나오려면 제대로 된 보상도 필요하다고 믿고 일단 저희가 마중물을 부어보자고 시작했어요.

그렇게 해보니까 데이터 저널리즘은 좋은데 일반 대중에게는 허들(장애물)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저희가 부딪힌 문제들은 이런 거예요. 내년 3월이 대선인데 누구의 형수, 누구의 장모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얘기만 해도 괜찮을까요? 지금은 대장동, 아니 50억원이 모든 걸 삼켜버렸어요. 사실 대선은 민주주의의 축제라고 할 만큼 굉장히 중요한 이벤트고, 향후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갈 것인가, 어떤 정책을 우선순위로 둘 것인가에 관해서 얘기해야 하죠.

코로나 시대, 재난은 공평하지 않게 약자에게 가장 치명적으로 다가옵니다. 거기에 제대로 대응을 하고 있는지,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굉장히 많은데 이 문제를 누가 풀 것인가, 사회 안전망 얘기도 해야 할 것이고, 돌봄문제, 재정, 세금은 어떻게 가야 하는지 여러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이런 얘기를 한 마디도 안 할 수가 있을까요. 우리가 팬데믹을 겪으면서 깨달았지만 기후위기야말로 가장 중요한 아젠다인데 우리 미디어에서 기후 위기 얘기를 찾는 게 너무 어려워요. 그래서 우리라도 중요한 얘기를 하고 싶다, 우리는 미래를 얘기하고 싶다, 대선이라는 이벤트를 앞두고 한국 사회에 필요한 건 질문을 나누고 생각을 나누고 논의를 모아가는 과정, 그런 공론장이 아닐까, 얼룩소가 풀고자 하는 미디어 문제보다는 조금 가볍게 프로젝트로 10주만 달려보자 해서 준비한 게 ‘프로젝트 얼룩소’입니다.

얼룩소는 “A look at society”의 줄임말인데요, 저희는 다양한 관점과 다양한 시선들이 모여서 생각을 나눌 때 해법을 찾을 수 있다고 믿어요. 한 사람이 혹은 어떤 언론이 ‘우리만 정론이야’라고 정답을 주는 일, ‘어떤 대선 후보가 이렇게 가야 돼’라는 것보다는 조금 더 넓게 듣고 그 얘기를 조금 더 떠들 수 있는 마당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걸 어떻게 만들까 고민하다 우리가 먼저 질문을 던져 보기로 했고 질문 44개로 시작을 했어요. 질문을 던지고 거기에 대해서 얘기를 나눠보자는 거예요. 얘기를 나누는 방식도 여러 방식이 있어요. 그런데 미디어를 해보고 싶다고 했을 때 ‘우리가 제일 똑똑해’, ‘우리가 모든 정답을 알고 있어’, ‘우리가 대신 물어봐 주고 대신 전문가들의 좋은 답을 가져올게’라고 하는 시대는 지난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오히려 생산조차도 이용자들이, 대중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한다면 어떨까요?

쏘프라이즈를 하면서 고수들이 곳곳에 숨어있다는 걸 발견했는데, 각 분야에서 성실하게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고 허들을 낮춰서 그분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냥 ‘하자’고 하면 동기부여가 중요한데 또다시 쏘프라이즈와 같은 이벤트 방식을 고민했고 쏘프라이즈를 진행할 때는 하루에 한 편, 100만원을 드리겠다고 했다면 이번에는 하루 100명에게 1만원씩 드리겠다고 바꿔봤어요. 허들은 낮추고 대신 질문은 다양하게 내놓았어요. 우리 사회가 어떻게 나아갈지에 대해서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질문들을 공개했고, 동시에 이용자들이 새로운 질문도 제시할 수 있도록 했어요. 그랬더니 정말 많은 질문이 쏟아져 나왔어요.

처음에는 저희가 사용설명서 하나를 놓고 출발을 했어요. 3일 만에 원글과 답글이 1,000개가 올라왔어요. 답글도 굉장히 중요하게 생각하는데요, 공론장에서는 누가 얘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거기에 의견을 보태는 것도 중요해서 답글과 원글의 계층을 같은 선상에 놓고 봅니다.

‘사람들이 글을 쓰고 싶어서 어떻게 참았지?’하고 생각할 만큼 사람들의 반응이 컸어요. 많은 이용자와 함께 생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문가들의 관점은 또 어떻게 담을지 고민이었고, 저희 자체적인 오리지널 콘텐츠도 내놓고 싶었어요. 생산의 세 개의 축이 있습니다. 오리지널 콘텐츠, 전문가의 글, 그리고 얼룩커(일반 이용자)들의 글입니다. 오리지널은 지난주에 세 편이 나갔고, 주기는 아직 완성되지 않았어요. 오리지널 콘텐츠는 일단 사람들이 얼룩소에 로그인하고 계속 찾아오게 만들어야 할 핵심 요소 중 하나죠. 데이터 팀의 오리지널도 이번 주에 처음 선보입니다. 새로운 미디어는 우리 혼자서 만드는 게 아니라고 보니까 얼룩커들과 전문가들을 모시는데 진심이고요. 오리지널은 기존 미디어와 닮은 모습이긴 한데 방식은 좀 다를 듯 해요. 오리지널 콘텐츠에 달린 답글들을 정리해서 답글로 소통하는 방식을 포함해서요.

얼룩커들의 글이 많이 쏟아지는 가운데 정말 좋은 글을 발견하기 쉽지 않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런 문제를 풀기 위해 ‘에디터 픽’을 만들었어요. 하루 최대 5개를 넘지 않는 선에서 ‘에디터 픽’을 선정하고 해당 글을 쓰신 분께 20만원의 보상을 드립니다.

저희가 섭외한 전문가들도 공개를 했습니다. 그분들이 주도적으로 관점을 나누어주는 역할을 해주시길 기대합니다. 글을 써주셔도 좋고, 큐레이션도 좋아요. 그냥 인사이트를 나눠달라고 허들을 낮춰놨어요. 중요한 것은 답을 원하는 게 아니라 질문을 나누고 싶다는 거예요. 저희가 계속 이야기하는 게 사실 검색만 하면 많은 답이 쏟아지지만 그것만 가지고 얘기를 할 수는 없어요. 더 희소한, 귀한 자원은 질문이 아닐까 해요. 우리가 지금 나눠야 할 얘기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나누고자 합니다.

얼룩소는 어떻게 탄생하게 된 건가요? 어떤 분들이 얼룩소를 만든 건가요?

미디어를 욕하는 사람 많잖아요. 미디어가 동네북이에요. 한 것 대비 많이 두들겨 맞는다고도 할 수 있겠고. 사실은 유통에서 문제가 생겼는데 포털에서는 더 이상 유의미한 뉴스 발견하기 어려워졌어요. 저도 포털 뉴스를 애용하던 사람으로서 에디터들이 골라주던 시절과 알고리즘으로 모든 게 대체된 이후에 오히려 저와 같은 사람의 만족도는 떨어졌어요. 중요한 뉴스보다는 많이 본 뉴스 기준으로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사건사고 위주의 기사가 더 많이 유통됩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생산도 문제인데 좋은 기사가 덜 생산되는 것이 아닐까? 요즘 일간지 기자들은 하루에 3~10개의 기사를 쓴다고 하는데 그렇게 해서 좋은 기사가 나올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해봤어요. 포털 노출을 늘리기 위해 언론사들이 물량공세를 하다 보니 퀄리티 컨트롤이 쉽지 않아요. 생산의 문제와 유통의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하지? 우리는 점점 더 뉴스를 안 보는 것 아닐까? 제가 이런 문제를 고민한 지 오래되었어요. 민주주의 사회에서 미디어가 굉장히 중요한데 우리가 뭔가 바뀌고 있는 상황에 대응을 잘하고 있나? 이런 고민을 나누던 사람들끼리 이 문제를 진지하게 풀어보지 않겠냐고 해서 모이게 됐어요.

뉴닉, 닷페이스, 롱블랙이라든지 다양한 분야에서 미디어 문제를 풀어보려는 시도들, 특히 젊은 세대의 니즈를 빠르게 대응해보고자 젊은 매체들이 등장했어요. 저도 다른 방식으로 문제 해결을 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어요. 어떻게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어요. 저희도 해법을 찾기 위해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 거죠.

지금 진행하는 프로젝트 얼룩소 이후에 또다른 프로젝트가 예정되어 있나요?

프로젝트 얼룩소를 10주를 진행하면 12월이 됩니다. 우선 10주 동안 프로젝트 얼룩소를 점검하고 프로젝트를 이어갈지 결정하려 합니다. 다만 저희가 당초 예상한 본 서비스는 대선 이후입니다. 대선 이전에는 우리 사회의 이런저런 문제, 대선을 앞두고 우리가 꼭 다루고 싶은 이야기에 집중해보기 위한 프로젝트를 하고 있는 거고요. 저희가 어느 정도 체력이 쌓이고 경험도 쌓고 무엇보다 우리에게 공감하고 함께 의견을 나눠줄 수 있는 얼룩커들이 모이고 나면 본편은 더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얼룩덜룩’ 다양한 생각들이 오가는 놀이터를 원하고 있어요. 속보에는 큰 관심이 없고, 지속 가능한 미디어로 다르게 접근해보고 싶어요.

지속 가능한 미디어란 무엇인가요?

미디어가 아무리 사회적으로 책무를 다하고 역할을 한다는 것을 떠나서 미디어도 기업이라서 독자나 광고주가 사주는 시장이 있어야 해요. 저희는 그 시장이 더 진화해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하고 생각합니다. 지금 현재의 미디어들은 충분한 효과를 거두고 있는지, 광고주들이 느낄 때 미디어 효과가 충분할지 생각해봐야 합니다.

저희도 구독모델에 관심이 많고요. 최근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가치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기업을 설명할 때 소셜임팩트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미디어도 사회적 역할을 하는 것과 동시에 기업으로서 성장하고 실적을 내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고 그런 문제도 같이 풀고 싶어요.

저희가 지금 쓰는 보상은 일반 기업의 마케팅 비용과 같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는 이용자들에게 좋은 글을 쓸 때 보상된다는 경험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 보고 싶었어요. 저희가 수익을 만들어낸다면 글 잘 쓰는 분들과 나누는 방향으로 고민을 하고 있고, 글 잘 쓰는 이들이 몰려오는 플랫폼을 만들어보고 싶어요.

여러 직업을 거쳐오셨는데 어떤 목표나 가치를 가지고 계신가요?

기자, 인터넷 기업 대외협력, 정책 담당자, 청와대 비서관, 작가, 포럼 프로그래머를 거쳐 이번 일이 다섯 번째 직업인데요, 가슴 뛰는 일을 하지 않겠냐는 말에 이끌려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해오던 방식에 안주하는 것보다, 스스로가 성장하는 것에 관심이 많아요. 사람이 자리를 목표로 하면 스포일된다고 믿어요. 예를 들어 ‘내가 언론사의 편집국장을 해야겠다, 부처 공무원인데 국장을 하고 싶다, 장관을 하고 싶다, 임원이 되고 싶다’고 하면 내가 그 자리에 가면 잘할 것 같지만 일단 그 자리에 가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럼 목적과 수단이 뒤섞일 수 있어요. 저는 무엇이 되고 싶다가 아니라 인생의 묘미는 다음 단계에 뭐가 나올지 모르는데 있다고 생각해요. 열심히 살다 보면 새로운 문이 열릴 것이다, ‘지금 최선을 다하다 보면 열리지 않을까’라고 이제는 얘기할 수 있는데 저도 한동안 막막한 시절도 있었어요.

사실 저는 아이를 낳고 나서 목표가 하나였어요.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는 것. 부끄럽지 않다는 것은 원칙을 지키고, 게으르지 않았다든지, 태도가 좋다든지 하는 것들일 거예요. 제가 이렇게 직업을 많이 바꿀 거라고 상상도 안 해봤어요. 기자 할 때는 천생 기자라는 얘기를 들었고요, 인터넷 기업 일은 정말 재미있었어요. 공무원이 된다는 것은 상상해본 적이 없었어요. 국민청원을 어떻게 만들까 고민할 때 사람들에게 스스로 변화를 만든다는 참여 효능감을 주고 사회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는 시민의 감각을 만들어야만 인기 없는 청와대 홈페이지에 사람들이 오겠구나 싶었어요. 제가 그런 걸 만들게 될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하나의 관통하는 맥락이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인데 내가 그쪽에 진심이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제가 기자 출신일 땐 몰랐는데, 기자를 그만두고 나서 한국사회의 미디어의 힘이나 역할을 훨씬 더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다음’에서 공론장이 어떻게 형성이 되고, 어떻게 작동하는가. 기자의 입장에서 잘 못 보던 세상을 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 계속 그쪽에 계속 관심을 가지고 얘기를 하게 된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