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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사회에서 왜 가짜정보가 더 문제되는 것일까?

미디어 리터러시, "디지털 사회의 필수 생존역량이자 경쟁력이지만, 개인의 책임과 영역으로만 볼 일은 아닙니다. 디지털 사회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필수불가결한 능력이라는 점은 이를 사회적 차원으로 접근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E Editorial Team 2022년 03월 21일

[글쓴이: 구본권 | 한겨레 사람과디지털연구소장]

정보화는 편리함과 함께 새로운 고민거리도 안고 왔습니다. 스마트폰, 모바일인터넷 환경에서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바로 정보를 찾아보고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편리하고 강력한 도구를 지니고 살게 됐습니다. 하지만 가짜뉴스와 허위 조작정보의 영향과 피해도 전에 없이 광범하고 신속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각국 선거 때마다 허위 왜곡 정보는 여론과 투표 결과에 큰 영향을 미쳤고, 근래의 코로나19 대유행 상황에서는 거짓 정보가 바이러스만큼이나 유해하고 위험하다는 사실을 일깨워줬습니다. 바이러스와 싸우는 게 본업인 세계보건기구(WHO)가 코로나19와 관련한 ‘정보전염병(인포데믹)’을 경고했을 정도지요.

왜 정보사회에서 허위 정보의 문제가 더 심각해진 것일까요? 누구나 마음껏 주장을 펼치고 유통할 수 있는 1인 미디어, 소셜미디어 환경의 초연결 세상에서는 왜곡정보, 가짜뉴스를 원천차단할 수도, 발본색원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가짜뉴스는 변종 바이러스처럼 계속해서 진화하고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에 박멸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황당한 주장도 인터넷에선 손쉽게 근거를 장만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사실이 자신의 가치와 충돌할 때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고수할 수 있고 반대 증거를 기각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낸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황당한 생각과 주장도 인터넷에서는 손쉽게 동조자와 옹호 논리를 만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세계경제포럼은 2013년 보고서에서 ‘대량의 허위 디지털 정보가 현대 사회의 주요 리스크의 하나’라고 밝혔습니다. 미국 컨설팅기업 가트너(Gartner)는 2017년 미래전망보고서를 통해 ‘2022년이 되면 선진국 시민 대부분은 진짜 정보보다 가짜 정보를 더 많이 접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습니다. 갈수록 가짜뉴스와 허위정보가 늘어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인 겁니다.

역설적 상황입니다. 현재 인류는 역사상 어느 시기보다 많은 교육을 받았고, 강력하고 편리한 정보화 도구를 늘 휴대하고 있지만 허위 왜곡 정보의 피해는 더욱 커진 겁니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요?

문해력의 문제

디지털 정보화 세상이 되면서 정보의 구조와 유통이 근본적으로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새로운 환경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태도와 능력이 필요하지요. 글을 읽어야 근대 사회에서 시민으로 살아갈 수 있듯이 디지털 세상에서는 디지털 기술의 기본적 문법과 소양을 갖춰야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거지요. 하지만 디지털 세상은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들은 디지털 세상에서 필요한 새로운 능력과 접근방법을 알지 못한다는 게 문제의 원인입니다.

디지털과 인터넷 세상은 과거와 달리, 이용자가 누구의 도움없이 직접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세상입니다. 오늘날은 초등학생도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어른들이 알려주지 않는 정보를 얼마든지 이용할 수 있는 환경입니다. 편리한 세상이지만, 그로 인한 부작용도 적지 않은 거지요.

그래서 진짜정보와 가짜정보가 섞여 있는 정보 더미에서 정보 이용주체 스스로 진짜-가짜를 감식할 줄 아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해졌습니다. 이는 바로 정보의 진위와 신뢰성을 판별할 줄 아는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입니다. ‘리터러시(Literacy)’는 ‘문해력(文解力)’이란 말로, 지금까지는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능력을 일컬었습니다. 디지털 정보화 세상은 단지 글자만 읽을 줄 안다고 해서, 문제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디지털 환경은 정보를 직접 접근하고 이용하는 세상인 만큼, 각자가 정보를 제대로 판단하고 활용할 줄 아는 능력을 필수적으로 갖춰야 합니다. 디지털 세상에서 우리가 이용하는 정보는 인터넷과 소셜미디어, 매스컴 등 다양한 형태를 띠지만 공통된 것은 이 모든 것이 ‘미디어’라는 겁니다. 디지털 세상에서 미디어의 영향력이 어느 때보다 커진 만큼,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기 위한 누구나 미디어 활용, 판단 능력을 갖춰야 합니다.

스마트폰 덕분에 모바일 환경에서 미심쩍은 정보를 검증하기 어느 때보다 간편해졌지만 왜곡 정보의 영향력과 위험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습니다. 중요하고 매력적으로 다가온 정보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능력은 본능입니다. 하지만 그런 정보를 비판적으로 따져보고 수용하는 능력은 본능이 아닙니다.

이렇게 중요한 능력이지만 정규 교육에서는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의 교육 체계가 오늘날과 같은 모바일과 인터넷 이전 시기에 틀이 짜인 것도 배경입니다. 또한 한국 사회의 정규 교육은 주로 학교에서 입시를 대비한 교과목의 지식 습득과 평가 위주로 이뤄져 왔지요. 하지만 실제 사회생활에서는 입시를 대비한 정형적 지식보다 미디어를 통해 만나게 되는 유동적 정보와 지식을 판별하고 읽어내는 능력이 훨씬 중요합니다.

디지털 시민성

한국 청소년들은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에서 매번 높은 순위를 기록하지만 한국 성인들의 실질 문해력은 OECD 국가 중 하위권입니다. 2021년 5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피사(PISA) 21세기 독자: 디지털 세상에서의 문해력 개발> 보고서에서 한국의 만 15살 학생(중3, 고1)들은 사기성 전자우편(피싱 메일)을 식별하는 역량 평가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들중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해 충격을 안겨준 바 있습니다. 학교에서 인터넷 정보의 편향성 여부를 판단하는 교육을 받았다는 비율도 오이시디 평균에 못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인터넷 강국’이라고 자부하지만 알고 보면 허울만 번드르르하고 실속은 없는 겁니다. 이러한 조사 결과는 한국 사회에서 교육이 입시 위주로 진행되고 졸업 이후 사회생활에 필수적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지식의 유효기간이 단축되고 정보 비대칭 현상이 강화되는 정보사회에서 미디어 리터러시와 평생학습은 개인과 사회가 갖춰야 할 무엇보다 중요한 능력입니다.

그래서 디지털 사회에서는 새로운 시민성인 ‘디지털 시민성(Digital Citizenship)’ 차원의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 강화가 필요합니다. 근대 제도교육이 읽기, 쓰기, 셈하기 능력 배양에 초점을 맞춘 것은 이 능력이 산업사회와 시민사회 노동자와 시민에게 요구되는 필수 능력과 자격이었기 때문이지요. 디지털 정보사회는 구성원들에게 산업시대와 다른 종류의 능력을 요구합니다. 모두가 정보에 상시적으로 접근할 수 있고, 유용한 정보와 왜곡 정보가 뒤섞인 무한한 정보더미가 펼쳐진 현재 상황에서 필히 갖춰야 할 능력입니다.

바로 디지털 미디어 활용능력과 비판적 사고력을 핵심으로 하는 ‘미디어 리터러시’ 능력입니다. 디지털 사회의 필수 생존역량이자 경쟁력이지만, 개인의 책임과 영역으로만 볼 일은 아닙니다. 디지털 사회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필수불가결한 능력이라는 점은 이를 사회적 차원으로 접근해야 함을 의미합니다. 선진사회는 제도교육 이후에도 평생학습이 활발하게 이뤄집니다. 의무교육 이후 성인들의 학습과 교육이 이뤄지는 주된 경로는 일상 속 정보와 오락의 도구인 미디어인 거죠. 자유로운 언론과 미디어 활용 능력이 개인과 사회의 핵심적인 지적 역량인 만큼, 우리나라도 범사회적 차원에서 모든 시민의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과 학습에 적극 나서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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