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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4 우리 눈에 띈 글들

배달과 잡무를 돈주고 시키는 은둔형 경제(Shut-in Economy)가 팬데믹을 만나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 경제의 그림자에는 긱 노동자들이 있다.

박상현 2020년 04월 04일

1. 은둔형 경제: 논의의 시작

The Shut-In Economy
은둔형 경제(shut-in economy)는 문자 그대로는 집을 떠나지 않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배달 받을 뿐 아니라, 집안 청소 같은 서비스를 제공 받으며 사는 새로운 형태의 삶의 방식과 그 방식을 지탱하는 경제를 말한다. 대개 스마트폰이 본격적으로 보편화된 2010년 이후로 등장한, 앱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서비스들의 결과로 이후 차츰 확산되다가 2015년에 이르면 부유한 테크 노동자들이 많이 모인 미국 샌프란시스코 주변에서 이런 형태의 삶의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 기사는 그런 현상을 가장 처음 발견, 분석하고 이름을 붙인 로렌 스마일리의 글이다.

하지만 단순히 제일 먼저 다뤘다고 해서 유명한 글인 것은 아니다. 읽다보면 유난히 밑줄을 많이 긋게 되는 글이 있는데 이 기사가 그렇다. 가령 이런 대목이다. "사회적 계층은 당신이 하는 집안일(chores, 잡무)로 구분될 수 있다. 상류층은 개인비서, 집사, 요리사, 운전기사가 대신 해주고, 중산층은 간혹 베이비시터나 피자 배달원을 사용하는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스스로 해결하고, 하류층은 자신의 집안일을 스스로 할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집안일도 해준다." 꼭 한 번 읽어볼 만한 글.

2. 현대판 집사와 하인

The Servant Economy
이 글은 위의 로렌 스마일리의 기사보다 4년 늦게 나왔지만, 애틀랜틱 매거진의 테크 전문기자 알렉시스 매드리걸이 같은 현상에 자신만의 분석을 적용했다. 스마일리는 사람들이 하는 집안일로 세 개의 계층을 나누었다면, 매드리걸은 가진 자와 못 가진 자를 일을 시키는 사람(the demanding)과 시키는대로 수행하는 사람(the on-demand)로 구분한다.

매드리걸은 이런 계층구분에서 더 나아가 이런 서비스들이 진정으로 부가가치를 생산할 능력이 있는지, 아니면 거대한 투자금을 태워서 시장을 장악할 뿐인지를 묻는다. 우버(Uber)류의 서비스들이 등장한 것으로 세상이 정말로 의미있게 변화했는지, 그 변화는 지속가능한 것인지 묻는다. 특히 "중산층"이라는 것이 2차대전 이후에 세상에 잠깐 등장했다가 사라지고 있는 것으로 보는 매드리걸의 시각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3. 팬데믹으로 급증한 배달 수요

Delivery services see a surge in business amid coronavirus crisis
위의 두 개의 글은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이 세계를 휩쓸기 전에 씌어진 것들이다. 물론 팬데믹의 등장으로 위의 두 글은 더욱 더 중요해졌다. 정확한 분석이었을 뿐 아니라, 그 발전 속도 또한 빨라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팬데믹으로 은둔형 경제는 어떻게 진전되었을까?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현재 상황에서의 성적표가 이 기사다. 만약 이에 대해 좀 더 들어보고 싶다면 이 기사도 도움이 된다: Coronavirus: Postmates, Door Dash, UberEats offer no-contact delivery options

4. 시험대에 올라선 긱(gig) 경제

The Gig Economy Has Never Been Tested by a Pandemic
한 때 '공유경제'라는 화려한 이름으로 환영받았다가 결국 비정규 계약직, 영세한 자영업자들이 떠받치는 '긱(gig) 경제'라는 이름으로 바뀐 현대의 노동형태는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그럭저럭 유지가 되어왔다. 그 배경에는 위의 글에서 매드리걸이 주장한 것 처럼 투자자들의 욕심이 있기도 하지만, 정규직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는 현실도 존재한다. 하지만 그렇게 아슬아슬하게 유지되어 오던 긱 경제가 팬데믹이라는 거대한 시험대에 올랐다는 것이 이 글의 핵심 주장이다.

이 글 역시 알렉시스 매드리걸이 쓴 것으로 위에서 소개한 그의 글에 이어 나온 일종의 후속편이라고 볼 수 있는데, 팬데믹으로 긱 경제, 혹은 은둔형 경제가 처하게 될 다양한 시나리오를 짧은 글 안에 담았다. 특히 그가 기사에서 이야기한 "아마존 노동자가 코로나19에 걸리면?"이라는 시나리오는 이 글이 나온 지 한 달 만에 실제로 크게 불거져서 뉴욕시장까지 개입하게 되는 큰 사건으로 번지고 있는 중. 관련한 내용을 좀 더 찾는다면 다음의 두 기사도 참고:
The Covid-19 Pandemic Aggravates Disputes Around Gig Work
Pandemic Erodes Gig Economy Work

5. 팬데믹과 긱 노동자의 사회안전망

Pandemic Inspires Fresh Thinking on Safety Net for Gig Workers
은둔형 경제, 긱노동과 팬데믹의 문제의 핵심은 이거다: 팬데믹으로 이동이 통제되어 아무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에서 사람들을 생존하게 하는 필수적인 서비스(essential services라는 것은 법적인 지위를 가진 분류다)를 긱 노동자들이 제공하고 있지만, 다른 필수적인 서비스들에서 일하는 일반적인 노동자들과 달리 긱 노동자들은 정규직도 아니고, 노동자로서 개인의 안전에 아무런 보장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즉, 사회가 필수적인 기능을 하청, 용역으로 내어준 셈.

물론 우버, 리프트, 도어대시와 같은 미국의 대형업체들은 배달원들의 안전를 위한 비상조치를 발표하기는 했다. 하지만 비상조치에도 불구하고 배달원들은 일을 하지 않으면 당장 굶게되는 상황에 있고, 따라서 본인이 아파도 숨기고 일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이 사회전체를 위험에 빠뜨리게 되는 일임은 당연하다.

이 글은 우리가 당연히 논의했어야 할 이런 문제가 팬데믹을 맞아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일로 다가왔음을 지적한다. 특히 자영업자로 등록된 배달원들이 아파서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해서 왜 기업이그들을 도와야 하는지 묻는 질문은 (이들을 정식직원으로 전환하도록 하는 법은 긱 노동자들에게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지 못했다) 궁극적으로 사회 안전망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든다.


Photo by Viktor Forgacs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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