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진행: 강현숙, 오주영
장관으로서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하다.
하루 일과보다 요일별 하는 일을 말해주는 것이 내가 주로 어떤 일을 하는지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먼저 월요일에는 팀 미팅을 가지고, 각 팀원이 어떤 일을 진행하고 있는지 공유한다.
화요일에는 대만의 외곽과 시골 지역을 직접 방문해 지역 사람들을 만난다. 사람들과 만나서 나누는 대화는 실시간으로 각 부처에 공유가 된다.
수요일은 내 사무실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날이다. 2시 전까지는 누구든 약속없이 나를 만날 수 있고, 2시 이후부터는 미리 시간 약속을 한 사람들을 만난다. 이 때 대화한 내용들은 CCL이 적용되어 공개된다. 이런 만남들을 통해 최신의 사회 혁신에 대해 파악할 수 있고, 필요할 경우 관련있는 부처들의 담당자과 연결해주기도 한다.
목요일에는 각료회의를 주최한다. 각료회의 때 사람들에게서 얻은 아이디어들을 전달한다. 오후에는 과학기술위원회 회의가 있다. 이 회의에서는 5G 네트워크라든지, AI 연구에 사용할 예산을 어떻게 할당할 것인지 같은 내용들을 함께 결정한다. 이 자리에서 각 부처의 과학기술 관련 예산이 결정되기 때문에 각 부처의 예산안을 살펴보고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그리고 공동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도록 조율하는 작업을 돕는다.
금요일은 온라인 플랫폼에서 5천명 이상의 서명을 받은 제안을 올린 사람이 회의를 열 수 있다. 이 회의에서 쓰레기 소각, 플라스틱 빨대 사용 줄이기, 등산할 때 최신의 GPS 시스템을 사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방안, 시골에 병원을 설립하는 방안 등 다양한 주제를 가지고 논의한다. 어떤 사안이 논의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제한은 없다.
토요일에는 주로 강연을 한다.
당신은 늘 개방성을 강조한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
나는 열 네 살 때 처음으로 아카이브 커뮤니티(archive community)라는 곳을 접하게 되었다. 당시 중학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커뮤니티에서 학술활동에 참여할 수 있었다. 커뮤니티의 사람들은 내가 열 네 살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나를 동료 연구원으로 대해줬다. 우리는 함께 문제를 해결했다.
이는 오픈(개방형) 디지털 플랫폼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픈 디지털 플랫폼이 아니었으면 비행기를 타고 그곳으로 찾아가야 했을 것이고, 15년 후에 박사과정을 마친 후에나 연구원으로 같이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중학교는 의무교육이었기 때문에 반드시 다녀야 했었는데, 나의 이런 활동을 알게 된 교장 선생님의 배려로 나는 학교에 가는 대신 오픈 플랫폼에서 학술활동을 계속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이 있기 때문에 나는 공공부분의 혁신 역량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인터넷은 정치적 이슈들로 항상 뜨겁다. 하지만 대부분 편을 나눠서 가십거리에 반응하는 경우가 많고, 차분하게 함께 서로의 의견을 주고 받는 논의보다는 자기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과 함께 인터넷에서 좋아요를 누르면서 자신들만의 장벽을 쌓고 있다. 대만의 사정도 비슷한가? 비슷하다면 해결방안이 있을까?
논쟁은 나쁜 것이 아니다. 다만 사실에 근거한 논쟁을 해야 한다. 우선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논쟁을 하도록 한다. 이를 위해 관련된 모든 공개된 데이터들을 수집해 그중에서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 20개 정도를 선정한 후 국가컴퓨팅센터의 슈퍼컴퓨터에 업로드한다. 이를 가지고 사람들이 데이터 분석을 통해 예측을 하는 등의 작업을 할 수 있도록 코드를 올리도록 한다. 우리는 데이터의 사실여부 확인에 대한 논의를 가장 앞세운다.
CDM (Common Data Set)을 만든 후, 데이터에 대해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 공유한다. 같은 데이터를 보면서도 발전시켜야 할 부분들을 찾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분노를 느끼는 사람들도 있다. 같은 데이터를 보며 느끼는 감정은 어떤 것이 옳고 어떤 것이 잘모되었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자유롭게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사람들이 타인의 감정을 보고 있는지 확인한다. 사실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 만큼 다르지 않다. 물론 소셜단체들은 서로의 다름을 강조하는데, 그건 그렇게 해야 사람들에게 잘 팔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이 특정 사항에 대해 느끼는 감정은 비슷하다. 이것이 바로 상식이며 ‘공동의 이해’이다.
이런 ‘공동의 이해'를 발견한 후 세번째 단계인 아이디에이션(ideation)으로 넘어간다. 공동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아이디에이션은 새로운 세금신고시스템이나 건강보험 등에 실현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포커스 대화(Focus Conversation)’ 방법론으로 만들어져 있으며, 사람들은 이 방법론을 바탕으로 논의를 진행하게 된다.
포용적인 사회를 만드는데 IT기술이 어떻게 사용될 수 있을까?
절대 기술로부터 시작하면 안된다. 그리고 우리는 혁신은 공공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민간에서 먼저 규범과 기준을 만들고 그를 실현하기 위해 기술이 사용되어야 된다.
10년 후 미래에는 공무원의 역할이 어떻게 바뀔까?
우선 공무원이 책임져야 할 것은 세 가지이다. 첫번째는 확실성이다. 상수도와 인터넷이 끊김없이 제공되도록 하는 것도 확실성이다. 두번째는 정의와 균등함이다. 모두는 균등한 기회를 가져야 하며 사회정의가 유지되도록 노력해야한다. 세번째는 민주주의 의지에 대한 반영이다.
공무원의 역할은 민주주의 의지의 변화에 따라 함께 바뀔 것이다. 10년 뒤에는 사람들이 누군가가 대신 해주길 바라는 대신 직접적으로 민주주의적인 행동을 할 것이며 더이상 디지털 장관 같은 역할이 필요없게 될 수도 있다.
또한 머신러닝과 자동화 등이 공무원들이 하는 업무 중 ‘확실성'과 관련된 업무들을 대체할 것이다. 따라서 10년 후 공무원의 역할은 공공의 가치를 찾아 사회정의가 유지되도록 하는데 집중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 사이에 사회적 지위가 다르더라도 공유할 수 있는 공공의 가치를 구성원들이 찾아내고 관련 규범을 만드는 데는 인간의 지혜가 필요하기 때문에 이 역할은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디지털 장관으로서 앞으로 계획이 무엇인지?
나의 근무조건은 세가지이다. 첫번째 나는 어디서든 일할 수 있고, 두번째 나는 어떠한 지시도 내리지 않는다. 세번째 나는 모든 것을 공개한다. 이 지위가 있던 없던 상관없이 위의 조건만 따른다면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계속 해나갈 것이다.
디지털 장관을 그만둔 후에 앞으로 계획은 무엇인지?
나는 언제나 디지털 혁신을 위한 미니스터(minister) 였다. 이 미니스터라는 단어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하나는 정부에서 일하는 ‘장관’이고, 다른 하나는 (소식을 전파하는) ‘전도자’이다. 나는 한정된 자원을 가지고 벌이는 제로섬게임에서의 경쟁을 디지털을 사용하여 풍요로움으로 바꿀 수 있다는 좋은 소식을 전하고 다닌다. 이는 지속가능한 공동의 목표를 강화하는 것이고, 결핍에서 풍요로 변화하는 것이며, 이는 바로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의 미션이기도 하다. 프리 소프트웨어 운동부터 오픈소스 운동과 열린정부 운동, 그리고 지적 커먼즈(intellectual commons) 운동을 하면서 내가 설교를 하고 다닌 내용이다. 난 나는 정부를 위해 일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와 함께 일하는 것 뿐이다. 나는 언제나 전도자로 남아있을 것이다. <끝>
사진 출처: 오드리 탕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