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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임리뷰와 커먼즈

클레임리뷰가 가진 협업적 생산의 효능이 인포데믹의 국면에서 재차 확증된다면, '아름다움'을 넘어선 커먼즈의 실용적 위상은 더욱 높아지지 않을까?

E Editorial Team 2020년 06월 08일

[글쓴이: 이성규, 전 메디아티 이사/미디어고토사 편집장]

요하이 벤클러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2015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Creative Commons) 글로벌 서밋 키노트에서 부의 불평등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으로서 ‘창조적 공유지 기반 경제모델’을 제안하면서 아래와 같은 인상적인 말을 남겼다.

“창조적 공유지 기반 경제모델이 기존 자산 소유 중심의 시장모델보다 실질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걸 증명해야 한다.”

공유가 그저 공유로만 머물 것이 아니라 시장과 통합돼야 하고, 그 속에서 가치와 우위를 증명해내야 한다는 메시지였다. 동료간 실용주의(Peer Pragmatism)라는 개념을 내세운 것도 공유가 그저 '좋은 것'으로만 남을 것이 아니라 '작동하는 것', '경쟁력 우위에 있는 것'이 돼야 한다는 맥락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공유와 커먼즈는 한국 사회에서 혹은 더 넓은 지역적 범주에서 '아름다운 것' 이상의 가치와 유용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오히려 '공유경제'라는 이름으로 약탈적이고 착취적인 특성만 부각되고 있다.

클레임리뷰(ClaimReview)를 벤클러의 프레임에서 보자면 ‘작동하는 것’에 해당한다. 협력적 사회적 생산이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현실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귀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클레임리뷰는 쉽게 설명하면 팩트체크 기사에 누구나가 보편적으로 접근하고 활용하기 위한 일종의 마크업 언어다. 2015년 워싱턴포스트의 대표적 팩트체커인 글렌 케슬러가 팩트체크 기사를 더 많은 독자들에게 전달하기 위한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 Schema.org의 댄 브리컬리(Dan Brickely)와 구글의 저스틴 코슬린(Justin Kosslyn), 듀크대 빌 아데어(Bill Adair) 교수가 협력해 만들어 낸 팩트체크 기사의 표준 마크업 모델이다.

클레임리뷰는 말하자면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네트워크 정보 생태계를 교정하자는 발상이다. 허위조작 정보가 생산돼 퍼져나가는 속도는 검증된 사실 정보가 확산되는 속도에 비해 빠를 수밖에 없다. 인터넷의 자정능력은 이 과정에서 무력화한다. 허위조작 정보는 생산 비용이 낮고, 확증편향을 기대하는 수용자들에게 흡수력이 높으며 이로 인해 고정된 인식, 편견으로 고착화하는 정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반면, 팩트체크 기사는 생산의 진입장벽이 높고, 전문성이 요구되며, 확증편향적 수용자 경향성과 마찰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확산 속도에서 상대적 약점이 존재한다. 언어 장벽은 팩트체크의 국가간 경계를 넘어설 수 있는 잠재력마저 약화시킨다. 모든 면에서 악화의 전파력을 제동하는데 결점을 지니고 있는 팩트체크 기사는 또다른 돌파구와 해결방안을 모색해야만 했다.

‘협업’은 팩트체커들의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허위조작정보의 빠른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선 단일 국가의 팩트체커, 단일 국가의 플랫폼, 단일 국가의 유통 노력만으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이를 위해 먼저 팩트체크 기사의 표준적인 꼴을 만들게 된다. 팩트체크 기사는 기본적으로 검증하고자 하는 특정 행위자의 주장이 있어야 하고, 팩트체킹을 시도한 조직이 누구인지를 밝혀야 하며, 검증한 주장에 대한 최종 판결(verdict)이 표시돼 있어야 한다는 형식 규약이 바로 클레임리뷰다.

기계가 이해 가능한 마크업 언어로 위 형식 규약의 표식을 남겨두면, 특정한 공간에 자동으로 쌓이게 되고 다양한 주체들이 전세계 팩트체크 기사를 활용해 변형 서비스를 만들 수 있게 되는 방식이다. 이 지점에서 커먼즈의 위력이 발휘된다.

데이터커먼즈닷오알지는 클레임리뷰 태깅이 된 팩트체크 기사들이 모이는 가상 공간이다. 물론 데이터커먼즈는 클레임리뷰 마크업의 허브가 되기 위해 출범한 곳은 아니다. 전세계 수많은 정부나 공적 기관이 공개한 데이터세트가 서로 결합되고 교환될 수 있도록 하나의 체계를 부여하는 비영리 기관이다. 이를 통해 연구자들이 마음껏 다른 나라에서 공개된 데이터세트에 접근할 수 있도록 돕고, 거대한 지식 그래프를 창출할 수 있는 작업을 지원한다. 이질적 데이터를 하나의 데이터로 통합될 수 있도록 데이터의 구조화를 꾀하는 자발적 커먼즈 지지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구글의 팩트체커 익스플로러 등을 통해 팩트체크 기사에 클레임리뷰 태깅이 완료되면, 그 즉시 팩트체크 기사는 데이터커먼즈라는 공유지에 모이게 된다. 공유지에 대한 접근권은 완전히 열려있다. 전세계 연구자들과 팩트체커들은 다른 지역의 팩트체커들이 생산한 검증된 사실에 접근해 추가적인 작업을 모색할 수 있게 되고, 전세계 팩트체크 기사의 유형과 특성, 검증대상이 된 허위조작 정보의 패턴을 발견할 수도 있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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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의 협력도 중요한 자산이자 가치다. 데이터커먼즈에 누적된 팩트체크 기사들은 구글 검색, 유튜브, 마이크로소프트 빙, 페이스북 등으로 퍼져나가 허위조작 정보보다 더 높은 노출 영역을 차지하게 된다. 이를 통해 가짜뉴스로 상징되는 위험한 정보의 확산세에 제동을 걸 수 있게 됐고, 현재는 더 많은 영역에서 팩트체크 기사가 조명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기자-학자-플랫폼의 협력적 생산/유통 체계는, '아름다운 것', '선한 것'에 그치지 않고 실용적 제품과 결합돼 실질적 효능을 발휘하고 있다. 예를 들어, 유튜브에서 'covid and ibuprofen'을 검색하면 팩트체크닷오알지 등 클레임리뷰 마크업이 된 팩트체크 기사가 가장 상위에 뜨게 된다. 듀크대 리포터스랩의 ‘팩트스트림’이라는 앱도 클레임리뷰의 기반 위에서 작동한다.

코로나19 대유행 국면에서는 다양한 팩트체크 앱들이 개발돼 허위조작 정보와 일전을 벌이고 있다.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는 ‘코로나 바이러스 팩트 동맹’을 결성하고, 전세계 100여명의 팩트체커들이 작성한 팩트체크 기사를 데이터베이스 형태로 제공하고 있다. 클레임리뷰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클레임리뷰로 마련된 협력의 노하우가 생산적으로 이전된 사례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데이터베이스는 워츠앱의 코로나19 챗봇에도 활용되면서, 전세계의 허위정보 검증에 직접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

클레임리뷰는 마크업 언어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뉴스 저작권에 관한한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고수하는 언론인 집단이 정보의 위기 상황에서 커먼즈라는 공유지 모델을 적극 수용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미 전세계 곳곳에서 언론인 집단과 플랫폼은 저작권료 지불을 놓고 갈등을 빚고 있다. 프랑스가 그렇고 호주 또한 그렇다. 상당한 높은 생산 비용을 요구하는 팩트체크 기사를 공유지로 향하게 한 선택은 그래서 이례적이다. 심지어 클레임리뷰라는 번거로운 마크업 과정을 손수 처리한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플랫폼이라는 행위자의 동참과 적극 노출이라는 실질적 유익 제공이 없었다면 지금처럼 확산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클레임리뷰가 허위조작정보의 확산 속도를 얼마나 늦췄는지는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어렵다. 그것의 효과가 허위정보를 대하는 수용자들의 태도와 인식을 변화시키는데 얼마나 기여했는지도 아직은 증명해내기는 어렵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언론-학계-플랫폼의 협력적 생산 동맹의 구축으로 실질적 작동의 매커니즘이 만들어졌다는 사실이다. 팩트체크를 기자들이 생산하면, 학계는 마크업의 표준 모델을 업데이트하고, 플랫폼은 이를 자사 제품에 적극적으로 노출하는 생산적 확산체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커먼즈라는 철학과 가치 위에서 이 시스템이 구축되지 않았다면, 지금도 세 주체는 저작권과 대가 문제로 지난한 협상만 반복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아니, 이미 협상장을 박차고 나가 다시 으르렁대며 헐뜯고 있었을지 모른다. 클레임리뷰라는 협업적 기술 모델을 커먼즈의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클레임리뷰는 현재 미디어리뷰라는 확장된 모델로 진화하는 중이다. 허위조작 정보의 유형이 텍스트에서 영상과 이미지로 전이되면서 클레임리뷰라는 협력의 틀도 그만큼 확장될 필요가 있어서다. 이 또한 제안은 워싱턴포스트의 팩트체커로부터 시작이 됐다. 지금도 세 주체는 협력의 틀 안에서 유기적으로 토론하고 대안을 찾는 중이다.

시장모델로는 가능하지 않았던 3주체의 협업적 생산 모델은 코로나19 국면에서 더 큰 위력을 발휘하며 결합의 밀도를 높이는 중이다. 낙관할 수만은 없겠지만 현재까지의 진행 상황만을 놓고 보더라도 장족의 발전임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협업적 생산의 효능이 ‘인포데믹’ 국면에서 재차 확증된다면, ‘아름다움’을 넘어선 커먼즈의 실용적 위상은 더욱 높아지지 않을까 기대를 걸어보려고 한다.


Cover image by Charles Deluvio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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