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adings

7월 첫째 주, 우리 눈에 띈 글들

비욘세와 제이 Z가 구독자를 얻으려고 했던 독점공개가 불법복제를 키운 이유, 버클리가 보여준 언론의 자유와 한계, 그리고 눈에 띄지 않았던 미국의 귀족층 상위 9.9%

박상현 2018년 07월 12일

1. 스트리밍: 독점공개와 불법복제 사이의 상관관계

Beyoncé and JAY-Z’s Piracy Problem
지금 미국 음반시장은 스포티파이, 애플뮤직과 같은 스트리밍 서비스가 장악하고 있다. 하지만 과거의 음반시장과 비교했을 때 가수와 같은 창작자에게 돌아오는 몫이 크게 줄어든 상황에서 테일러 스위프트나 프린스 같은 몇몇 유명 가수들이 반기를 들었지만, 결국 시장에 굴복하고 스트리밍을 허용했다.

하지만 가수 부부인 비욘세와 제이 Z는 아예 자신들이 직접 스트리밍 회사를 설립하는 방법을 택했다. 타이달Tidal이라는 이 회사는 두 사람의 뮤지션 외에도 칸예 웨스트Kanye West, 리하나Rihanna등의 가수들의 곡을 스트리밍하는 마이너 플레이어이지만, 워낙 팝계의 막강한 아티스트들이기 때문에 나름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정작 비욘세와 제이 Z가 함께 만든 새 앨범 'Everything Is Love'를 발매하면서 타이달에서만 들을 수 있게 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사람들이 일제히 불법복제를 시작한 것. 새로운 앨범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가 불법으로 복제하는 법을 주고 받는 대화로 채워지는 상황에서 두 가수는 이틀 만에 독점공개를 포기하고 스포티파이, 애플 등의 다른 스트리밍 서비스에서도 듣게 허용해야 했다. 구독자를 더 얻으려고 시도한 독점공개가 구독자 대신 불법복제를 키운다는 흥미로운 역설을 피치포크Pitchfork가 자세하게 설명한 기사.

2. 소셜미디어 트롤과 언론의 자유

How Social-Media Trolls Turned U.C. Berkeley Into a Free-Speech Circus
일베의 언어폭력은 언론의 자유로 보호되어야 할까? 반대할 사람들도 많겠지만, 가장 듣기 싫은 주장의 발언권도 보장되지 않으면 언론의 자유라는 권리가 가진 의미는 퇴색된다. 하지만, 내가 반대하는 사람들의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내 주머니에서 돈이 나가야 한다면? 이 상황이 작년 2월 미국에서 가장 진보적인 대학 중 하나로 꼽히는 U.C. Berkeley에서 벌어졌다.

트럼프 당선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미국의 대안 우파 매체 브라이트바트Breitbart에서 칼럼니스트로 활동한 마일로 이아노풀로스Milo Yiannopoulos가 버클리에서 'Dangerous Faggot Tour'라는 성소수자반대집회를 연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학생들은 학교 측에 집회를 열지 못하게 해달라는 반대청원을 했고,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학교 당국은 합법적인 절차로 허가된 집회를 금할 수 없다고 했다. 결국 집회는 화염병과 돌이 날아다니는 폭력시위장으로 돌변했고, 학교는 막대한 물적 손해를 입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사태가 "진보적이라는 학생들이 언론의 자유를 막는다"는 선전거리를 우파매체들에게 제공했다는 사실이다. 선동가인 이아노풀로스는 기회를 잡아서 'Free Speech Week'이라는 행사를 다시 버클리 캠퍼스에서 열겠다고 신청을 했고, 버클리 대학교는 집회에서 학생과 학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서 1백 만 달러, 우리돈으로 11억원이 넘는 비용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가뜩이나 재정난을 앓고 있는 버클리의 선택은? 소위 소셜미디어의 트롤들이 큰 사회적인 비용으로 다가오는 우리나라 사회에도 흥미롭게 다가오는 뉴요커The New Yorker기사. 언론의 자유도 흔히 생각하는 무한의 자유가 아닐 수 있음을 역사적인 예를 들어 차분하게 설명한다.

3. 넷플릭스는 왜 시청자 리뷰를 없앴을까

Netflix user reviews weren’t useful anyway
넷플릭스는 원래 시청자의 리뷰를 그다지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유는? 첫째, 시청자의 리뷰가 항상 진실을 말해주는 것은 아니고, 둘째, 알고리듬의 제왕이라는 넷플릭스는 시청자가 원하는 것을 시청자 본인보다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넷플릭스는 시청자 리뷰는 유지해왔지만, 쉽게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두고 있다가 드디어 지난 주에 리뷰를 없애겠다는 발표를 했다. 그렇다면 왜 이제까지는 없애지 않았고, 이제와서 없애는 걸까? 엔가젯Engadget이 그 이유를 설명한다.

힌트: 넷플릭스는 몇 년 전부터 자체 제작 영화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4. 가짜 유명인 계정과의 끝나지 않는 전쟁

Oprah, Is That You? On Social Media, the Answer Is Often No.
미국 컨트리 가수들 중에는 콘서트장에서 "당신과의 약속대로 이혼하고 왔으니 이제 결혼하자"고 찾아오는 여성팬들로 골치가 아픈 사람들이 제법 많다고 한다. 자신의 사진들을 내세워서 운영되는 가짜 소셜 계정이 가수의 팬들에게 접근해서 몇 달 동안 사랑한다는 말로 구슬려서 이혼하게 만들고, 콘서트장에서 보자고 한다는 것.

유명인들의 이름을 사칭하는 가짜 소셜계정은 소셜미디어의 초기부터 있어왔지만, 이제는 그 숫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페이스북과 같은 플랫폼들이 가계정 차단 전쟁을 벌이고 있지만,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라는 (페이스북 한 곳에서 지운 가계정만 전체의 4%라고 한다) 뉴욕타임즈The New York Times의 기자가 직접 가계정을 만들어 테스트를 해보며 쓴 기사.

그나마 가장 빠르게 잘 대응하는 소셜미디어는? 트위터.

5. 미국의 새로운 귀족층, 상위 9.9%

The 9.9 Percent Is the New American Aristocracy

지난 한 주, 아니 지난 한 달 동안 읽었던 최고의 기사. 미국에서 'We Are 99%' 운동이 벌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미국인구의 0.1%에 달하는 수퍼리치들이 모든 소득을 빨아들이고 있는 불평등한 상황을 지적하지만, 중요한 사실 하나가 논의에서 빠졌다고 애틀랜틱The Atlantic의 매튜 스튜어트Matthew Stewart가 지적한다.

그의 주장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은 아래의 그래프다. 미국의 0.1% 수퍼리치는 하위 90%에서 돈을 가져갔을 뿐, 상위 9.9%는 여전히 미국 부의 60%를 가져가고 있는 현대사회의 귀족들(aristocrats)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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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 본인의 가족사(그의 증조할아버지는 황금광시대의 재벌기업 스탠다드오일의 일원이었다) 이야기를 시작해서 자기 가족이 몰락(?)했어도 여전히 보스톤의 비싼 동네에서 살면서 아이를 좋은 학교에 보내는, 상위 9.9%의 생활을 하고 있는지 설명하면서 미국 부의 재분배와 계층의 고착 문제를 놀랄만큼 냉철하게 바라보는 기사. 가난한 집의 자식은 아무리 노력해도 다시 부모의 처지로 전락하고, 부잣집 자식은 아무리 떨어져도 가족과 친구들의 도움으로 다시 부모의 지위 수준을 회복하게 되는 고무줄 같은 사회적 자본을 설명하면서, 그런 자본을 가진 0.1%와 달리 자신은 전적으로 자신의 노력으로 모든 것을 해냈다고 생각하는 (즉, 자신이 실력있는 meritocrat이라고 생각하는) 위선을 지적한다.

하지만, 기사는 딱딱하거나 선언적이지 않고 갖가지 흥미로운 일화들(가령, 보스톤 지역의 맞벌이 부부가 베이비시터를 구하면서 내건 자격조건이 과거 18,19세기 영국의 귀족들이 구하던 가정교사의 조건과 얼마나 흡사한지를 보여준다)과 깜짝 놀랄 사실들이 곳곳에 등장한다. 예를 들어, 19세기 영국 귀족과 농민의 키 차이는 무려 20cm가 넘었고, 미국의 노예제의 정점에서는 상위 0.1%의 백인가족들이 미국의 노예의 1/4을 소유했고, 9.9%가 나머지 3/4을 소유했다.

기자는 글 말미에 이렇게 말한다: 미국의 독립을 주도한 계층은 하위 90%도, 상위 0.1%도 아닌 상위 9.9%였다. 그들의 국의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만든 것이다. 그들이 전체를 위한 평등을 추구하고, 그것을 위해 싸웠을 때 미국은 진보했다.

이 기사를 쉽게 설명한 애틀랜틱의 동영상은 꼭 한 번 볼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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