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인터넷 개인정보를 지켜낸 어느 숨은 영웅의 이야기
The Unlikely Activists Who Took On Silicon Valley — and Won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구글은 워싱턴 로비의 초보였지만, 작년에는 미국 정가에서 단일기업으로는 가장 많은 돈을 쓰는 기업이 되었다. 구글보다 10년 어린 페이스북이 로비에 사용하는 금액의 성장률은 구글의 2배가 된다. 왜 그럴까? 뉴욕타임즈 매거진의 이 기사는 시민운동과는 전혀 거리가 먼 부동산업자 한 사람이 구글과 페이스북 같은 실리콘밸리 최대기업들을 상대로 개인정보보호를 위한 투쟁을 하게 된 사연과 그 과정을 자세히 설명한다.
실리콘밸리의 호황으로 큰 돈을 벌게 된 한 남자가 구글에 다니는 친구와 이야기를 하던 중 테크기업의 정보침해와 제3자 기업에 대한 개인정보 판매가 도를 넘은 수준이라는 것을 깨닫고 캘리포니아의 주민투표를 통해 규제할 방법을 마련하기로 한다. 부동산업자라서 테크와 개인정보에 대해서는 아는 게 거의 없지만, 계약서/법안의 숨은 독소조항을 찾아내는 데는 누구보다 꼼꼼한 이 남자, 앨래스테어 맥태거트. 그가 사비를 털어서 주민투표를 추진한다고 하자, 곧바로 테크기업이 고용한 변호사들이 찾아오고, 그 때 부터 숨막히는 입법전쟁이 시작된다.
하지만 맥태거트는 헐리우드 영화에 등장하는 열혈변호사나 운동가가 아니다. 자신이 실리콘밸리의 활황으로 돈을 벌었기 때문에 구글 같은 대기업이 계속 잘 나갔으면 하는, 친기업적인 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다. 그는 단지 현재의 개인정보관리는 너무나 부실하기 때문에 그것만 수정하자는 주장. 따라서 개인정보보호 운동가들과 테크기업 모두에게서 공격을 받는 처지에 놓인다. 거기에 주민투표 대신 입법을 선호하는 캘리포니아의 주정부 의원들까지 등장해서 게임은 복잡해진다.
결국 그는 원하는 입법을 이뤄내지만,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캘리포니아의 주민투표가 전세계인들이 사용하는 인터넷 서비스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흥미로운 공식에 대해서도 알려주는 아주 유익한 글.
2. 블록체인으로 투표를 대체할 수 있을까?
Meet the Man With a Radical Plan for Blockchain Voting
암호화폐를 찬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반드시 등장하는 말이 "암호화폐는 궁극적으로 화폐를 대신할 뿐 아니라, 중앙은행을 폐지, 대체하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에 좀 더 열정적인 사람들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사회가 운영되는 구조, 즉 정치의 구조까지 바꿔버릴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 말을 듣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쩌면' '언젠가는' 정도의 가능성으로 듣고 말지만, 그것이 정말로 가능하다고 믿고 방법을 설계하고, 실험하는 사람들이 있다. 와이어드의 이 기사는 바로 그런 사람의 이야기다.
중국의 모바일 결제 시스템이 가장 앞선 이유는 중국의 신용카드를 비롯한 금융시스템의 낙후가 중국의 경제발전을 따라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들 하는 것 처럼, 대규모의 급격한 사회변혁은 흔히 문제가 있는 시스템에서 발생한다. 마찬가지로 산티아고 시리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아르헨티나의 부패한 정치가 전통적인 방법으로는 절대 고쳐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아예 정치제도 자체를 블록체인으로 대체해버리겠다는 다짐을 했다. '정치의 암호화폐'(political cryptocurrency)를 통해 몇 년에 한 번 있는 투표를 일상화하고, 직접민주주의와 대의민주주의를 섞은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꿈이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이 문제를 제기한다. 전국민이 암호키를 잊어버리지 않고 기억하고, 소프트웨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건 환상에 불과하며, 투명성이 오히려 표를 매수하는 방법으로 악용될 수 있고, 블록체인이 아무리 안전해도 말웨어는 블록체인으로 암호화되기 전단계에서 공격할 수 있는 등, 문제가 산적해있어서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리의 노력이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가 만든 플랫폼인 소버린Soverign은 가상투표를 통해 콜롬비아 정부가 반군인 FARC와의 휴전을 묻는 국민투표의 결과를 어느 여론조사보다 정확하게 맞췄다. '예/아니오'만을 묻는 투표와 훨씬 더 뉘앙스있는 질문이 가능한 시스템의 차이였던 것이다. 기사가 시리의 소버린이 현재의 민주정치를 대체할 것으로 보지는 않으면서 진지하게 보도한 이유이기도 하다.
3. 대형 플랫폼에 올인했던 한 미디어 기업의 최후
The Media Tried To Game The Machines and You'll Never Guess What Happened Next (Facebook Won)
디지털 미디어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마 생생하게 기억할 거다. 2016년은 페이스북이 "Pivot to video"를 선언하면서 비디오 콘텐츠가 상단에 노출되고 더 많이 도달되도록 알고리듬으로 가산점을 주던 해였다. 저커버그는 오래지 않아 페이스북의 콘텐츠의 절반이 비디오가 될 거라면서 독려했고, 모두들 비디오를, 그것도 라이브 비디오를 해야 독자/사용자를 모을 수 있다고 믿고 덤벼들었다. 하지만 비디오에서 큰 재미를 보지 못한 페이스북이 다시 정책을 바꾸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기즈모도의 이 기사는 미디어 기업이 소셜 플랫폼, 특히 페이스북이라는 거대 채널에 소위 "몰빵"을 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업워디Upworthy라는 스타트업의 흥망성쇠를 통해 자세히 설명한다. 지금의 거의 잊혀진 이름이지만, 한 때 업워디는 '사상 유례없는 속도로 성장하는 미디어 기업'이라고 불렸던 스타트업이다. 페이스북의 공동설립자 크리스 휴즈와 레딧Reddit의 설립자 알렉시스 오헤이니언이 투자한 회사라는 것만으로도 업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무엇보다도 '페이스북에서 최대의 도달을 끌어낼 수 있는 공식을 찾아냈다'는 것이 그들의 자랑이었다. 좋게 말하면 성공 공식이고, 나쁘게 말하면 낚시성 제목 작성법 정도로 치부되기도 하지만, 페이스북이 모든 미디어를 무너뜨린다는 위기감이 팽배할 때 페이스북이라는 플랫폼에서 성공할 수 있는 비결을 찾았다는 것은 마치 보물지도처럼 여겨졌다. (실제로 뉴욕타임즈, CNN과 같은 전통적인 미디어 기업들도 열심히 배워서 따라했다).
하지만, 페이스북은 끊임없이 가산점을 주는 컨텐츠를 바꿨고, 그 때 마다 불필요한 인력의 대량해고와 새로운 고용을 반복하면서 업워디의 사세는 기울었다. 그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하는 이 기사는 말미에 무시무시한 말 한 마디를 인용한다. 미디어업계의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저커버그가 한 말이라고 한다:
"당신들(미디어)의 산업이 죽어갈 때 호스피스처럼 손을 잡아주겠습니다."
4. 미국의 한인시장에서 엄마를 생각하며 우는 딸
미국에 사는 한인들에게 "한인시장"은 한국의 맛을 구할 수 있는 유일한 창구다. 20년 전만 해도 지역별로 자그마한 한인시장들이 존재했지만, 이제는 그 중에서도 대형체인들이 등장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체인이 'H 마트'다. 과거, 한인들만 찾던 시절에는 '한아름Han Ah Reum'이라는 이름이었지만, 중국인들도 찾아오면서 한아름이라는 한글 이름 옆에 韓亞龍이라는 한자가 병기되었고, 아시아계가 아닌 미국인들도 찾아올 만큼 인기를 끌자 체인을 확장하면서 아예 읽기 쉬운 'H Mart'가 되었다. 그 민족의 음식을 모르고 그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말처럼 H 마트는 한국인들이 자녀에게 한국 입맛을 가르쳐주는 장소, 미국인들이 한국문화를 이해하는 학습장이 되어갔다.
뉴요커 실려서 큰 인기를 끈 이 글의 필자는 미국에서 백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다. 어릴 때 부터 엄마의 손을 잡고 한인시장에 들러서 떡볶이, 짜장면, 짬뽕 등의 음식을 사먹고, 뻥튀기 같은 한국 간식을 사먹으며 자란 필자에게 H 마트는 자신은 잘 모르는 한국의 맛과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연결고리다. 그런데 그렇게 한인시장에 함께 다니던 엄마가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났고, 필자는 H 마트에 들를 때 마다 뽀글이 파마를 한 한국인 할머니에게서, 어머니와 함께 사던 한국과자에서 어머니를 본다.
"Crying in H Mart"라는 제목이 필자의 추억과 심정을 잘 대변해주는, 가슴 절절하고 아름다운 글. 특히 한국음식과 간식에 대한 묘사가 너무나 정확하고 재치있는데, 내가 자주 가는 수퍼마켓이라는 상업공간이 아이들 세대에는 문화와 추억의 공간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해주었다.
5. 주주자본주의의 투사,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작동하는 방식
Paul Singer, Doomsday Investor
엘리엇 매니지먼트Elliott Management와 설립자 폴 싱어Paul Singer라는 이름은 한국에도 그다지 낯설지 않다. 주주의 이익을 대변하는 소위 "행동주의(activist) 헤지펀드"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한국 정부가 부당하게 승인해서 손해를 봤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8천 억 원 대의 소송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뉴요커의 이 기사에서는 삼성의 합병을 막으려는 엘리엇 매니지먼트의 압력을 피하기 위해 삼성이 정부에 뇌물을 제공한 것이 박근혜 정권이 무너지게 된 하나의 계기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어떤 펀드인지 알기 위해서는 설립자 폴 싱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 하는데, 그렇다면 이 글이 이 회사의 투자 철학과 그것을 위해 더러운 전략도 불사하는 싱어의 행동을 균형잡힌 시각으로 가장 잘 설명해주는 글일 것이다.
싱어의 철학을 가장 쉽게 설명하면 이렇다: 아프리카의 가젤 영양이 지금처럼 빨리 달릴 수 있게 된 이유는 조금이라도 약하거나 느린 영양이 모두 사자나 치타에게 잡혀 먹혔기 때문이듯, 자본주의에서 비효율적이고 부패한 기업과 그 관행이 사라져야 자본주의가 건강하게 발전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싱어는 기업이 방만한 경영을 하거나, 대표나 설립자가 배임을 한다면 회사는 망하거나 팔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처음부터 그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그렇게 경영의 실수나 나태함으로 저평가된 기업의 주식을 사들여서 충분한 힘을 보유한 후에 경영진에게 직접 전화를 해서 요구사항들을 전달한다. (그런 전화를 받는 경영진들은 마치 암선고를 받은 환자의 기분이 된다고 한다. 심지어 엘리엇 매니지먼트에게 걸린 기업들 끼리 주고 받는 대응책까지 존재한다). 그렇게 해서 요구사항을 순순히 들어주면 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온갖 공격을 통해 CEO를 끌어내리거나 회사 매각을 추진하기도 한다.
헤지펀드라는 이름과 달리 위험을 분산하지 않고, 오로지 주주의 이익, 자본주의 원칙 만을 고집해서 목적을 달성하는 폴 싱어가 전세계적으로 악명을 날린 것은 재정파탄에 이른 아르헨티나 정부와의 몇 년 간의 대결을 통해 엄청난 이익을 챙긴 사건 때문이다. 아르헨티나 국민들이 굶더라도 정부를 굴복시켜서 돈을 뜯어내지 않으면 교훈을 얻지 못하고 다시 부패한 행위를 반복한다는 것이 싱어의 주장.
이 글은 미국의 대형 건강보험사인 아테나Athena의 설립자이자 CEO인 조너선 부시(조지 W. 부시의 사촌이다)가 싱어의 공격을 받아 결국 자신이 키운 기업에서 해고 당하는 과정과 아르헨티나 정부를 굴복시킨 과정을 영화의 한 장면처럼 흥미진진하게 설명한다. 후기자본주의 사회에서 주주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것이 과연 우리 모두에게 이익일까? 방만하고 부패한 경영자로 부터 주주의 이익은 누가 지켜주어야 할까? 많은 질문을 하게 하면서도 재미있게 읽히는 글.